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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13 06:01 수정 : 2017.11.13 15:56

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가 지난해 10월부터 기본소득 파일럿 테스트를 하고 있는 케냐 서부의 한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지난 10월12일 학생들이 하교 인사를 하고 있다. 이 학교 보조 교사 몰리(가운데에서 왼쪽에 서있는 어른)는 기본소득으로 ‘메리 고 라운드’(계모임)에 가입했고, 목돈을 마련해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정교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세계는 지금 기본소득 실험중] ① 케냐
5~10명이 기본소득 쪼개 ‘계모임’
수급자 95명 중 대다수 참여
‘가축 구입’ ‘대학 진학’ ‘창업’ 등
목돈 마련해 꿈 키울 자양분 마련 마을

주민 매달 한자리에 모여
대화 늘면서 갈등·충돌 요소 줄어
범죄율 낮아지는 부수효과까지

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가 지난해 10월부터 기본소득 파일럿 테스트를 하고 있는 케냐 서부의 한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지난 10월12일 학생들이 하교 인사를 하고 있다. 이 학교 보조 교사 몰리(가운데에서 왼쪽에 서있는 어른)는 기본소득으로 ‘메리 고 라운드’(계모임)에 가입했고, 목돈을 마련해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정교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영어에서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는 회전목마를 뜻하지만 케냐에서는 계모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회원들이 매달 일정액을 모으고 순번대로 돌아가며 곗돈을 타기 때문에 ‘기쁨이 한 바퀴 돈다’는 의미로 ‘메리 고 라운드’라고 부른다. 케냐 서부의 한 시골 마을은 하루 세끼가 귀할 정도로 가난한 탓에 메리 고 라운드가 1개밖에 없었다. 미국 구호단체 ‘기브다이렉틀리’(GD·지디)가 지난해 10월부터 이 마을 18살 이상 성인 모두에게 1인당 한달 생활비 수준의 2250케냐실링(22달러·2만5000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기 시작한 뒤 현재까지 확인된 메리 고 라운드만 9개로 늘었다. 모임당 회원이 5~1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급자 95명 중 상당수가 계모임을 시작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지난달 10일과 12일 이 마을을 찾았을 때, 주민들은 영어 단어 “캐피털라이즈”(자본을 축적하다)를 반복해 사용하며 메리 고 라운드의 성격을 설명했다. 지디의 케냐 대외협력팀장 캐럴라인 테티는 “기본소득 지급 이후 가장 예상치 못했던 변화”로 이를 꼽았다.

숯 굽는 일을 하는 독신 남성 패트릭(39)은 기본소득으로 난생처음 염소 5마리를 사서 키우고 있다. 오랫동안 꿈꿔온 암소를 사기엔 아직 돈이 부족하다. 패트릭은 주민 6명과 함께 메리 고 라운드를 만들었다. 7명이 한달에 1000케냐실링(1만1000원)씩 내고 1~7번까지 매달 순번대로 7000케냐실링을 받아 간다. 마지막 7번이 곗돈을 받으면 1회차가 끝난다. 곗돈을 타봤느냐고 묻자 “내가 1번이었다”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패트릭은 소값으로 7000케냐실링을 선입금했다. 다음번 곗돈을 타서 소 주인에게 잔금 5000케냐실링을 입금하면 소를 보내준다. 패트릭은 “소를 최소한 7마리 갖고 싶다. 쟁기질할 수 있는 소를 가진 농부가 정말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몰리(24)는 마을 초등학교 영유아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고용한 보조교사로 일한다. 정부가 고용하는 중등학교 정규 교사가 되는 게 꿈인데,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교사자격증을 따야 한다. 몰리는 한 학기에 7250케냐실링인 학비를 마련하려고 기본소득을 쪼개 메리 고 라운드에 가입했다. 한 마을 주민인 친척 6명이 각각 한달에 1000케냐실링씩 곗돈을 붓는다. 몰리는 “기본소득을 받는 12년 안에 학위 과정을 마칠 것”이라며 삶의 가장 큰 변화로 메리 고 라운드와 대학 진학을 꼽았다.

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가 기본소득 파일럿 테스트를 하고 있는 케냐 서부의 한 마을에 사는 독신남 패트릭이 지난 10월10일 기본소득으로 처음 산 염소한테 풀을 먹이고 있다. 패트릭은 기본소득으로 ‘메리 고 라운드’(계모임)에 가입했으며, 목돈을 모아 소를 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마을에는 ‘자본 축적’ 이외에 다양한 부대효과도 나타났다. 마을 리더 케네디(42)는 “사람들이 매달 메리 고 라운드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토론하니까 강제로라도 서로 삶을 나눌 환경이 조성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최근 범죄나 빚, 기금 모금 같은 이슈에 대해 부쩍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케네디는 특히 “다툼과 충돌이 해소될 기회가 많아졌다”며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적은 돈도 큰 가치가 있는 가난한 마을에선 채무 불이행 문제가 왕왕 인간관계를 망치곤 했다. 빌려간 돈을 1년 이상 갚지 않으면 “야, 돈 필요 없어. 넌 두달 뒤에 갚겠다고 했지만 1년 지났어. 돈 안 갚아도 되니까 다신 보지 말자”며 의절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요즘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메리 고 라운드에 찾아가 공개적으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채무자가 곗돈으로 빚을 갚으면 다시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고 한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아그리파(37)는 “기본소득이 있으니까 돈을 빌려달랄까봐 서로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얘기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기본소득 이후 이 마을의 가장 큰 변화로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점을 꼽는 이들도 있다. 아그리파는 “전에는 집 앞에 풀어놓은 닭을 훔쳐가는 일이 잦고, 빈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강도도 있었는데 그런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케네디도 “전에는 사람들이 작은 문제로 싸우고 서로 훔쳤는데, 지금은 그런 이슈가 있으면 같이 앉아서 이야기한다”며 변화가 실감이 난나고 했다.

케냐/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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