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2 17:55
수정 : 2017.11.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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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시민들이 12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국제마라톤 대회 중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는 사아드 하리리 총리의 귀환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루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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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대통령 “하리리 총리 귀국해 사임 이유 밝히라” 입장 발표
레바논·예멘·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각지에서 충돌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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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시민들이 12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국제마라톤 대회 중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는 사아드 하리리 총리의 귀환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루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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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맹주 자리를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이 레바논과 예멘 등 중동 전역에서 폭발할 조짐이다. 야심만만한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견제를 위해 손을 잡으면서, 이 지역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던 이란 중심의 시아파 세력과 맹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신호탄은 지난 4일 사아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사우디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란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전격 사임을 발표한 것이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하리리 총리가 사임을 발표한 지 엿새 뒤인 지난 10일 “하리리 총리가 귀국해 사임 이유를 밝힐 때까지 정부는 수용 결정을 미룰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현지 언론 <데일리 스타> 등이 보도했다. 이란 쪽에서는 현재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하리리 총리가 사우디 정부에 의해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사우디의 지시대로 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우디는 이란과 헤즈볼라를 비난하면서 레바논의 자국민들에게 철수령을 내렸다. 친사우디 국가인 바레인과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도 사우디의 뒤를 따랐다. 바레인 내무부는 11일 전날 수도 마나마 인근에서 일어난 송유관 폭발 화재가 이란과 연계된 테러행위라고 주장했다.
레바논 시민들은 전쟁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 사는 후세인 카이레딘은 “이번엔 뭔가 다르다”며 “모든 계곡과 산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만약 시작된다면 절대 멈추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우디와 강력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레바논의 합법적 치안 유지군을 제외하고는 어떤 외국 군대나 무장단체, 민병대가 싸울 합법적 역할도 장소도 없다”며 “미국은 레바논의 정치적 독립과 주권을 강력히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과 사우디가 레바논에서 전쟁 유발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4일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겨냥해 발사한 미사일이 이란산이었던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 연합군은 이에 보복하려는 듯, 이날 예멘 수도인 사나의 국방부를 겨냥해 공습을 단행하면서 공세를 이어갔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 편에 섰던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이 최근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이젠 아프가니스탄도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장소가 될까 우려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중동 전역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최근 사태들의 배후에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완전한 붕괴가 도래한 가운데 패권을 선점하려는 이란, 사우디의 해묵은 경쟁이 얽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극심한 대립 관계가 됐다. 이란이 혁명을 통해 세속적 왕정을 전복하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우자, 사우디는 국내 근본주의 종교세력을 의식하며 이란 혁명의 여파를 차단하기 위해 나섰다.
이란 중심의 시아파 세력과 사우디를 맹주로 한 중동 수니파 왕정들 사이의 40년 해묵은 갈등이 최근 더욱 격화되고 있는 데 대해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라는 새로운 두가지 요소가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윌리엄 비먼 미국 미네소타대 인류학 교수는 분석했다. 비먼 교수는 <허핑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란에 적대적인 두 지도자의 동맹 강화로 중동 지역에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며 “사우디의 강화된 역할을 모색하고 있는 빈 살만과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원하는 트럼프에게 이란은 매우 적합한 목표물이 됐다”고 해석했다.
사우디 내부에서 대대적인 숙청을 벌이는 동시에 개혁 조처를 내놓고 있는 32살의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를 개방적인 온건 이슬람 국가로 바꾸겠다”며, 이란의 이슬람 혁명 때문에 사우디가 정상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파격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중동 전문가인 시어도어 카라시크는 “사우디는 중동 전역에 대한 구상을 수년 전부터 계획해왔다”며 “시아파의 협공에 맞서기 위해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동 지역 외교관들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이 빈 살만 왕세자에게 청신호를 줬고, 빈 살만이 너무 멀리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위험하다”며 “갑작스럽고 불안정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중동에서 이란-시리아 대리전이 재발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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