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07 07:00
수정 : 2017.11.0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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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왕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의 2014년 2월 사진. AP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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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왈리드 왕자, 1980년대 투자회사 세워
시티그룹·트위터·애플 등 주요 기업 투자
‘여성운전허용’ 결정 1년전 트위터로 “허용” 주장
개방적 태도에 서구 투자자·CEO들과 긴밀한 관계
CNN “CEO들이 트럼프에 전화해 중재 요청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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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왕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의 2014년 2월 사진. AP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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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부패 혐의로 체포된 11명의 왕자 가운데는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62) 왕자가 포함됐다. 알왈리드는 세계 100대 부자에 꼽히는 자산가이자 트위터, 시티그룹 등 유수의 기업에 거액을 투자한 바 있다. 그의 체포에 재계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알왈리드는 <포브스>가 집계한 2017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자산 규모 187억달러(약 20조원)로 45위에 올라 있는 세계적인 부자다. 그는 1980년대부터 투자회사 ‘킹덤 홀딩스’를 운영하며 뉴스코퍼레이션, 20세기 폭스, 트위터, 애플, 포시즌스 호텔 등 많은 기업에 지분 투자를 했다. 알왈리드가 그의 누리집에 공개한 이력을 보면 그는 이미 1991년에 시티그룹의 주요 투자자가 됐고 94년에는 페어몬트 호텔 앤 리조트 지분의 50%, 포시즌스 지분의 22%를 취득한다. 같은 해 파리 디즈니랜드의 지분 24%를 인수했다.
그는 호텔, 금융 등 전통 산업뿐 아니라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투자도 활발히 해 2011년에 트위터에 3억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롯해 <뉴욕 타임스>를 보면 차량공유업체 리프트, 중국 전자상거래기업 징동닷컴(JD.com)에도 투자해 수익을 거뒀다.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알왈리드는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멘로대학에서 경영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아버지에게 받은 3만달러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금세 돈을 날렸고, 다시 증여받은 30만달러도 3년만에 잃은 뒤, 세 번째로 증여를 받았을 때에야 사업을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알왈리드는 보수적인 사우디에서 비교적 개방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내년 상반기에 여성 운전을 허용할 것이라는 사우디 당국의 발표가 나오기 전인 지난해 11월 알왈리드는 트위터에서 여성의 운전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브스>는 알왈리드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머리를 천으로 가리지 않고 근무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여성들은 통상 외출 때 눈만 내놓고 검은 천으로 머리부터 발목까지 가리고 다녀야 한다.
그는 2015년에 수 년에 걸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001년 9·11테러가 터졌을 때는 뉴욕시에 1천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다만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뉴욕시는 이후 알왈리드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자 이 돈을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거물 투자자이자 튀는 행동을 일삼는 알왈리드가 대외적 주목은 받았지만, 그가 왕위 승계 서열 상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의 아버지가 1960년대에 억압적인 사우디 왕가에 반기를 들며 왕위 승계에서 사실상 밀려났기 때문이다. 알왈리드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왈리드의 체포로 최근 무함마드 왕세자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우디에 대한 대외 투자가 주춤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알왈리드 왕자는 보수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는 사우디에서 서구 투자자들과 방문자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미 지난 몇 년 간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혼란으로 사우디에서 자본 유출이 일어났고, 이번 체포는 그 속도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알왈리드의 체포는 비석유 부문을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만들고자 하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전 2030’에 투자하는 데 대한 국제적 관심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워싱턴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데이빗 오타웨이 선임 연구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알왈리드 체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곤란한 일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 매체는 “문제는 시티그룹의 마이클 오닐 회장, 뉴스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애플의 팀 쿡 혹은 트위터의 잭 도르시가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알왈리드 사건에 대한) 중재를 요청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이냐는 것”이라며 “알왈리드는 시티그룹을 비롯해 많은 회사의 고위직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는 이들 회사의 이사회에서 몇몇 최고경영자(CEO)들의 편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제 그들이 당시의 은혜를 갚을 수도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왕과 미국 기업들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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