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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1 21:32 수정 : 2017.07.21 21:36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김효진
국제에디터석 국제뉴스팀 기자 july@hani.co.kr

“저 여자는 악마다.”

지난 주말 트위터에서 한 여성이 크게 비난받았습니다. 이 여성은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사람을 죽이거나, 폭탄테러를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격렬하게 화를 내는 것을 보니 국가기밀을 다른 나라에 넘겨 나라에 큰 피해를 줬거나 강력범죄가 아니라도 다수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답은 전혀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무릎이 드러나는 치마와 민소매 상의를 입고, 머리카락을 온전히 드러낸 채 야외활동을 했군요. 그게 전부냐고요?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죄냐고요? 문제는 이 여성이 활보한 장소가 사우디아라비아고, 이 여성이 사우디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이 차림으로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북쪽 나즈드 지역에 위치한 유적지를 거닐었습니다. 여성은 자신이 산책하는 장면을 촬영했고, 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널리 공유되면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국제뉴스팀 김효진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줄 수 있는 나라 밖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끔찍한 일을 더 많이 전하고 있습니다.

쿨루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니스커트 영상 속 이 젊은 사우디 여성의 복장은 한국 시각으로 보기에는 통상적인 여름 복장입니다. 하지만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외출할 때 발목까지 가리는 헐렁한 검은색 겉옷 ‘아바야’를 입고, 눈만 내놓고 검은 천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 등을 착용해 신체 대부분을 가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뿐만 아니라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머리카락과 신체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복장 규제의 정도가 특히 심한 편입니다. 이란의 경우 사우디 같은 검은 겉옷은 강제돼 있지 않고 일종의 스카프인 ‘히잡’으로 여성이 머리카락과 목 부분을 가리고 다니게 합니다. 스카프의 색깔도 다채롭습니다. 사우디에서도 아바야의 소재며 장식을 달리하는 등 변형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패션’이라고 부르진 말아주세요. 패션 혹은 문화로 존중받으려면 적어도 착용하지 않았다고 잡혀가지는 않는 수준의 자유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사우디 경찰은 이 여성을 잡아들였습니다. 외설적인 복장을 했다는 이유로요. 여성은 경찰에 영상을 찍은 것은 맞지만 공유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고 합니다. 혼자 다니지도 않았고 남성 친척과 함께 다녔다고 진술했다고 하고요. 혼자 다니지 않았다는 말을 부랴부랴 덧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외출 때 아버지나 남자 형제 등 반드시 ‘남성 보호자’를 동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에서 에스엔에스를 통해 ‘복장 위반’ 여성을 잡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20대 여성이 머리카락과 무릎 아래를 노출한 치마를 입고 야외에서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경찰에 잡혀가 구금당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이나 거리에서 머리카락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거나 경찰에 체포된 사례는 다수 발견되고요.

하지만 이번주 내내 이어진 세계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워서일까요? 이례적으로 ‘미니스커트 영상’ 여성은 심문만 받고 풀려났다고 합니다.

사우디에서 여성의 옷차림을 규제하는 것은 종교적 이유라죠. 코란에는 실제로 “아내와 딸, 여성 신자들에게 긴 천으로 자신들을 가리라고 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런 구절을 구실로 여성 억압이 자행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황병하 조선대 교수의 2014년 논문을 참조하면 ‘와하비즘’을 창시한 사우디 이슬람의 정신적 지주 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 와합은 오히려 여성차별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성 인권을 유린하라’는 구절이 경전에 적혀 있다고 해도 차별을 정당화하기는 어렵겠지요.

문화적 다양성을 언급하며 차별을 중립적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지만, 사우디 내부에서 그 ‘문화’에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성은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할 때 쓰이는 개념이 아니라, 다수에게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소수자가 사용하는 저항의 언어이기도 하고요. 사우디에서는 1990년대부터 여성 운전 금지에 맞서 ‘여성 운전 캠페인’이 수차례 일어났습니다. 최근에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에 대해 일부 남성들과 언론에서 호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사우디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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