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0 16:56
수정 : 2017.07.1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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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450㎞의 사법 정의를 요구하는 대장정을 마친 ‘정의를 위한 행진’ 참여자들이 9일 이스탄불 동부 말테페 광장에 운집해 있다. 터키 야당은 이 날 모인 인원이 1백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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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의 철권통치 맞서
수백명 행진 25일만에 100만명
“권리, 법, 정의 회복” 요구
야당 의원 25년형 선고 등에 반발
국가비상사태 속 주부·노인들까지
지난달 앙카라 출발 하루 20km 걸어
이스탄불 가까워질수록 행렬 길어져
무력감 벗은 야당 “행진은 끝 아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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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450㎞의 사법 정의를 요구하는 대장정을 마친 ‘정의를 위한 행진’ 참여자들이 9일 이스탄불 동부 말테페 광장에 운집해 있다. 터키 야당은 이 날 모인 인원이 1백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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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료 의원의 체포에 반발해 수백명이 모여 시작된 시위는 25일이 지나자 100만명으로 불어났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진 ‘정의를 위한 행진’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어느 정도의 도전이 될지 주목된다.
외신을 보면, 사법 정의를 촉구하며 지난달 15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시작된 ‘정의를 위한 행진’이 450㎞ 떨어진 이스탄불 말테페 광장에서 9일 대장정을 마쳤다. 그간 행진에 참여한 인원이 정확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대장정을 주도한 제1야당 공화인민당은 이날 광장에 운집한 인원이 10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3년 탁심 광장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 뒤 최대 규모다.
공화인민당 대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우리는 정의를 위해 행진했다. 우리는 감옥에 갇힌 의원, 체포된 언론인, 해고된 학자들을 위해 행진했다. 우리는 정치 독점 아래에 있는 사법부 때문에 행진했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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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이스탄불 말테페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공화인민당 대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가 단상에 올라 있다. 공화인민당 창설자이자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모습을 담은 걸개그림이 뒤에 걸려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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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은 터키가 시리아에 무기를 넘기고 있다는 정보를 언론에 넘긴 혐의로 공화인민당 소속 에니스 베르베로을루 의원에게 징역 25년형이 선고된 다음날인 6월15일 시작됐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앞장섰다. 처음에는 공화인민당 지지자 등 수백명이 참여했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하루에 20㎞씩 행진을 계속해 나갔다.
지난해 7월 쿠데타를 진압해 정권을 부지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5만명 이상을 체포했고, 14만명 이상의 공무원, 군인 등을 해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언론인과 인권단체 활동가 등도 구금돼 세계적인 비난을 샀다. 야당과 행진에 참여한 이들은 지난해 쿠데타 이후 터키의 사법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본다. 더구나 지난 4월 개헌을 거치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법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강해졌다.
클르츠다로을루는 대장정을 진행하는 동안 “권리, 법, 정의”를 외치며 독립적 재판, 구금된 언론인 및 의원의 석방, 해직 공무원 복직 등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했다. 쿠르드 지역에 무력 투입을 그만하라는 서명에 참여한 해직 교수, 노동자, 주부, 노인들까지 차차 행진에 참여하며 이스탄불에 가까워질수록 행렬은 길어졌다.
국가비상사태 아래 조그만 시위도 진압하던 터키 정부는 행진을 “테러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해산 시도는 하지 않았다. 다만 행진에 1만5천명의 경찰을 붙여 감시했다. <비비시>(BBC) 방송은 적어도 수십만이 참여한 이 행동에 정부가 물리적으로 개입했을 때의 반발을 고려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1930년 마하트마 간디의 ‘소금행진’에도 비유되는 이 행진을 성공적으로 이끈 야당은 그동안의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분위기다. 공화인민당 의원 아이투으 아트즈는 “법정에 정의가 없기 때문에 거리에서 정의를 찾으려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시위에 참여한 50대 남성은 “(에르도안이 권력을 잡은 이래) 15년 동안 야당이 뉴스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온 나라에서 야당이 대화의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9일 대장정이 “새로운 탄생”이라며 “누구도 이 행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시작”이라며 이후의 참여도 호소했다. <비비시>는 “행진 주최자들과 참여자들에게 남은 과제는 터키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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