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23 18:02
수정 : 2017.05.2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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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오른쪽) 이스라엘 총리가 22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총리 관저에서 만찬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예루살렘/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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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도 아랍과의 반이란 연대 촉구
사우디에서는 “세계 각국이 이란 견제 합의”
수니파 국가들 결집-이스라엘과 연계 시도
친미블록 강화·경제적 이익 등 노린 듯
로하니 “투표함도 못 본 국가 방문” 비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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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오른쪽) 이스라엘 총리가 22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총리 관저에서 만찬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예루살렘/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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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 이란’ 깃발을 내걸었다. ‘반 이란’을 고리로 수니파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추구해 중동의 지정학 구도를 다시 짜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분쟁도 해결하겠다는 포석이다.
첫 해외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2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반 이란’ 외교 행보를 이어 나갔다. 그는 이스라엘에에서 “이란이 조성하는 위협을 놓고 이웃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공통의 대의를 가졌다는 깨달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살만 사우디 국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보기를 원한다”고도 밝혔다. 이스라엘이 아랍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촉구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것을 포함해 이스라엘이 원하는 현안에 대한 언급은 회피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는 압박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매우 친이스라엘적인 입장을 드러냈으나 막상 중동 순방에서는 철저한 사업가 스타일의 주고받기식 거래를 시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곤혹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란에 초점을 맞추며 애써 팔레스타인 문제를 건너뛰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아랍 지도자들이 분위기 변화와 현실적 평화를 위한 조건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일방적인 희망을 밝혔다.
앞서 트럼프는 살만 사우디 국왕을 비롯해 수니파 국가 지도자들과 만나 ‘반 이란’ 연대를 촉구해 이스라엘의 희망을 부풀게 했다. 트럼프는 “종파적 분쟁과 테러의 불에 기름을 붓는” 이란의 고립을 촉구했다. 특히 사우디는 중동에서 이슬람 세계 주도권을 놓고 이란과 대립해왔다. 사우디는 이란과 서방의 핵합의를 반대하며, 자신들도 핵개발을 하겠다고 위협해 미국과 갈등을 빚어왔다.
대선 때부터 이란과의 핵합의를 비난해온 트럼프로서는 전통적 친미 국가들인 걸프 지역 보수 왕정 등 수니파 국가들을 다시 공고한 친미블록으로 되돌리면서 현실적 이익도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사우디 방문에서 1100억달러(약 124조원)어치의 대규모 무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반 이란’을 고리로 꿩도 먹고 알고 먹는 행보라 할 수 있다. 수니파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관철시키고,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지렛대로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반 이란 아랍-이스라엘 연대’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이게 중동 분쟁에 돌파구가 될지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크다. 당장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과 아랍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연계할 뜻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운 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된 이란의 상황도 트럼프의 행보를 시대착오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란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 중 드물게 제도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는 4500만명의 이란 사람들이 투표에 참가하는 것을 보면서 이 지역에 도착했다”며 “그런데 선거의 정의조차 아는지 의심스럽고 투표함도 결코 보지 못한 나라를 방문했다”고 비꼬았다.
이란은 시아파인 이라크 정부,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부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현실적 세력이기도 하다.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의 프레드릭 웨리 연구원은 “중동 종파 분쟁은 (사우디와 이란 등의) 지정학적 경쟁의 산물”이라며 “우리는 지금 이 분쟁에서 부주의하게 한쪽 편을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란은 모든 악의 근원이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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