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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3 20:59 수정 : 2005.11.13 20:59

1993년 9월14일 워싱턴에서 이츠하크 라빈(왼쪽)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오른쪽)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오슬로협약에 서명한 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구촌파일] ‘팔’-‘이’ 오슬로협정 주역 약속했던 평화 ‘아직도…’

12일 저녁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 등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라빈광장에 모여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추구하다 10년 전 이곳에서 극우파 청년에 암살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를 추모했다.

하루 전인 11일에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 있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무덤에 모여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그의 1주기를 기렸다.

아라파트와 라빈, 두 사람은 1993년 9월 ‘오슬로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할 길을 찾으려 했던 영웅으로 기억된다. ‘오슬로협정’은 양쪽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와 서안에서 철군한다는 ‘두 국가 해법’을 제시했다. 1994년 아라파트와 라빈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95년 11월4일 라빈이 극우파 유대인에 암살됐고 평화에 대한 기대는 급격하게 식었다. 오슬로협정을 뜯어보면 가자와 서안에서 이스라엘 정착촌과 군대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는 등 많은 한계가 있었으나, 라빈의 죽음은 이런 제한된 양보마저도 수용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드러냈다.

라빈보다 9년을 더 살았던 아라파트의 말년도 부패 의혹과 권위적 통치에 대한 비판으로 얼룩졌고, 그는 결국 이스라엘군에 의해 1년 넘게 감금된 채 살다가 국가수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났다.

두 사람이 오슬로협정에서 약속했던 ‘평화’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휴전’은 사실상 깨졌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무장단체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에서 철수하기는 했지만, 서안지역에 들어서고 있는 이스라엘의 콘크리트 분리장벽과 정착촌은 팔레스타인에 이곳을 내주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비친다.

아라파트와 라빈 추모행렬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들의 가슴 속엔 평화와 공존, 평범하고 공정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그 소망은 언제,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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