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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6 14:03 수정 : 2016.09.26 14:23

‘프라이드’라고 불리는 사자 무리는 우두머리 수컷이 암사자와 새끼들을 거느리는 독특한 사회 구조를 이룬다. 우두머리 수컷이 사냥꾼의 총탄에 죽으면, 영아 살해와 떠돌이 사자에 의한 가축 습격 등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의 응가모 지역에서 ‘나자’와 함께 무리를 이끌던 수사자 ‘바닐라’와 암사자를 찍은 사진이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미래] 세실의 전설 ⑦ 젊은 수사자들의 비애

끔찍한 트로피 사자 사냥으로
‘나자’에 이어 ‘바닐라’도 죽자
주변의 수사자들 쳐들어왔다

쫓긴 젊은사자는 가축 습격할 테고
암사자는 도망가다 ‘영아살해’ 목도
사자 사회는 재앙에 빠진다

‘프라이드’라고 불리는 사자 무리는 우두머리 수컷이 암사자와 새끼들을 거느리는 독특한 사회 구조를 이룬다. 우두머리 수컷이 사냥꾼의 총탄에 죽으면, 영아 살해와 떠돌이 사자에 의한 가축 습격 등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의 응가모 지역에서 ‘나자’와 함께 무리를 이끌던 수사자 ‘바닐라’와 암사자를 찍은 사진이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매년 5월이면 항상 똑같다. 야생관리 당국에서 수사자가 잡혔다는 전갈이 온다. 그러면 우리는 사자를 찾아서 목에 단 위치추적장치를 수거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세실의 그 끔찍한 죽음 전에도 나는 그 일을 했다. 사실 사자 모니터링을 시작한 뒤부터선 해마다 치르는 연례행사다. 미국인 치과의사 사냥꾼에 의해 세실이 죽고 나서 반년 이상 나는 밤에는 성난 사자들을 만나고 낮에는 그보다 더 성난 사람들을 만났다. 미국과 유럽의 부자 사냥꾼들이 와서 벌이는 사자 사냥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다. 세실의 죽음에 분노했던 세계인들이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나자와 바닐라, 죽음 이후

황게국립공원의 일부 영토를 지배하던 ‘라’(Raah)라는 사자가 있었다. 그가 죽자 약간 젊은 두 수사자가 그의 빈 영토에 들어와 점령했다. 우리 연구원들이 알던 놈들이었다. ‘나자’(Naja)와 ‘바닐라’(Vanilla). 나자는 ‘코브라’라는 뜻이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감히 코브라 뱀을 건드린 적이 있어 그렇게 이름 붙였다. 바닐라? 음… 바닐라는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자와 바닐라는 라가 다스린 사자 왕국을 인수했다. 나자와 바닐라에 의해 기존의 새끼 사자들이 죽고 암사자들이 공원 바깥까지 쫓겨 다니는 등 몇 달간의 혼란이 이어졌지만, 결국 두 사자가 기존 암사자들이 새롭게 낳은 새끼들의 아비가 됨으로써 상황은 종료됐다. 나자와 바닐라의 왕국이 건설된 것이다.

2013년 10월 어느 날, 사자 감시단원 중 한 명이 사자 한 마리가 총에 맞았다며 나를 불렀다. 흔치 않은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냥허가구역이 아닌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공원 관리당국에 가서 이곳에 ‘팩’(PAC·Problem Animal Control)이라고 불리는 사냥허가권을 발급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공원 관리는 “아니요”라고 말했다.

팩은 ‘문제 동물’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민들과 충돌이 생긴 동물을 ‘솎아낼 수 있는’ 허가권을 주는 것이다. 곡물 재배지를 망친 코끼리나 가축을 습격한 맹수가 그런 ‘복수’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번 경우에는 공원 당국이 사냥허가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자 감시단원이 잘못 들은 말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트럭에 올라타고 현장에 달려갔다. 세 남자가 사자의 피부 껍질을 벗겨 지방을 뜯어내고 있었다. 나는 공원 관리인에게 위성 전화를 걸어 이 사자는 아마도 총에 맞아 죽은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도륙당하고 있던 사자가 바로 바닐라의 형제 나자였다. 팩 사냥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다. 미국인 부호에 의해 저질러지곤 하는 트로피 사냥(박제 등 기념품을 얻기 위해 벌이는 스포츠 사냥)으로 사살된 것이었다. 나자는 저세상으로 갔고 바닐라만 혼자 남았다. 즉, 바닐라가 위험해졌다는 얘기다.

바닐라는 그래도 그럭저럭 곤경을 헤쳐 나갔다. 동료 나자가 죽고 일곱 달 이상을 다른 수컷 경쟁자들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짐바브웨인 사냥 가이드가 미국인 사냥꾼 고객을 데려와 캠프를 차린 2014년 5월까지는 말이다. 두 사냥꾼은 수컷 얼룩말을 사냥해 그 고기를 국립공원 경계구역을 따라 미끼로 뿌려놓았다. 바닐라가 국립공원 경계를 따라 지나가는 철도에 도착한 건 얼마 안 되어서였다. 사자 바닐라의 우람한 갈기가 사냥꾼들의 눈에 포착됐다. 그 뒤, 나는 너무나 익숙한 메시지를 받고 뛰어야 했다.

“브렌트, 빨리 출동하십시오. 가서 사자의 위치추적장치 목걸이를 수거하세요. 바닐라가 죽었습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거 같았다. 사자 연구를 10년 하면서 나는 죽은 사자의 몰골과 냄새를 끔찍하게도 싫어하게 됐다. 사자들은 보통 내가 잘 아는 놈들이었다. 살갗이 벗겨지고 토막 난 익숙한 사자의 몸뚱어리를 보면서 나는 아팠다.

어린 수사자는 성장하면서 무리 내 어미와 아비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부모로부터 공격이 시작됐다는 것은 진화적으로 보면 종 보전을 위한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젊은 수사자가 드넓은 외부 세계로 나갈 때가 됐다는 신호다. 이렇게 해야 근친번식을 막을 수 있다.

아비 사자가 자기 영역을 강력하게 구축하고 있을 경우에는 수사자는 네 살이 될 때까지 무리에서 보호를 받기도 한다. 네 살이면 몸집은 크지만 경험은 없을 때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풋내기 수사자들은 보통 ‘수사자 연합’이라고 불리는 작은 그룹을 이뤄 살아간다. 많게는 8~9마리에 이른다. 어쨌든 이 경험 없는 코흘리개 사자들이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고난의 시절을 겪는다. 주인 없는 땅을 발견하거나 만만한 사자 연합의 땅을 빼앗기 전까지는 어려운 삶을 헤쳐 나가야 한다.

사냥꾼에게 죽은 바닐라의 새끼 사자. 두 수사자의 사냥으로 바닐라의 제국은 몰락하고 말았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나자와 바닐라가 살아 있을 적, 부시(Bush)와 부베지(Bhubezi)라는 이름의 젊은 두 사자는 나자와 바닐라가 다스리는 응가모(Ngamo)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나자가 죽은 뒤에도 얼마간 바닐라는 자신의 땅을 두 사자로부터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닐라 또한 죽은 것이다. 응가모는 피비린내 나는 혼란을 예고하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응가모에는 ‘응가모의 개구쟁이들’이라는 별명이 붙은 암사자들과 새끼 다섯 마리만 남아 있었다. 나자의 새끼들이었다. 이 새끼들도 위험해졌다.

나자와 바닐라가 저세상으로 떠난 대지의 밤은 조용했다. 부시와 부베지는 이 조용함의 원인을 깨달았는지 한 발짝 한 발짝 침입했다. 둘은 바닐라가 남겨놓은 영역 표시가 많이 사라졌다는 걸 차차 깨닫게 되면서 자신감이 오르기 시작한다. 하늘에서는 독수리들이 맴돌면서 죽은 사자의 사체로 달려들고 있었다. 나자와 바닐라의 제국은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문제 사자’ 만드는 건 사냥꾼

사자 무리에서 암수가 교미를 하고 새끼가 나오고 그 새끼가 무리를 떠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지 않는다. 새 영토를 인수한 수사자는 과거 지배자의 후손들을 돌보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가장 빨리 안정을 찾는 방법은 전 지배자의 새끼를 죽이는 것이다. ‘영아 살해’라고 불리는 잔인한 행위지만, 어쨌든 새끼를 잃은 암사자에게는 발정기가 찾아온다. 생물학 논문들은 이런 사자의 행동을 매우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라고 해석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암사자들은 자신의 새끼들이 죽는 걸 원치 않는다.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점령자 수사자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둘째, 새끼들을 데리고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는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어디를 간다고 수사자들이 없을 것인가? 수사자가 없는 가장 안전한 곳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곤경에 빠지긴 마찬가지다. 암사자들은 사냥을 해서 새끼를 먹여야 한다… 사냥감은 바로 염소와 소 떼다!

암사자와 마찬가지로 젊은 수사자들도 다른 수사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장소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먹을거리인 가축이 모여 있는 마을에 이르고 만다. 사자가 염소나 소 등 가축을 훨씬 잡기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라. 만약 그렇다면 힘세고 큰 수사자가 왜 국립공원 밖에서 먹잇감을 잡아먹지 않고, 야생에서 버펄로나 기린을 사냥하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겠는가? 사자는 언제나 야생동물을 먹고 싶어한다. 그리고 가축을 공격하는 ‘문제 사자’는 십중팔구 새끼를 돌보는 암사자나 무리에서 갓 쫓겨나온 젊은 수사자다.

아프리카에 여행 온 부자 사냥꾼들은 사자에게 총을 겨눈다. 정부에 지급하는 사냥 허가비가 야생 보전과 주민들의 삶에 기여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나자와 바닐라를 해치운 부자 사냥꾼들은 집에 돌아가 수사자의 머리 박제를 벽에 걸어놓고 아프리카에서 용감한 모험을 했노라고 친구들에게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나 자신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초원이 황폐해진 사실에 대해 그는 곧잘 눈을 감는다. 그 사냥꾼은 무리의 우두머리 수사자를 살해했다. 그 여파로 암사자는 새끼들을 데리고 사람과 가축이 있는 마을을 위험하게 전전하다가 결국 다른 영역의 수사자에게 새끼들을 잃는다. 무리에서 갓 나온 젊은 수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노련한 수사자들에게 쫓기다가 사람의 마을 근처로 몰리고 만다. 사람들은 사자 때문에 불안에 떨고 가축과 사자 모두 공포의 제물이 된다. 예로부터 맺어온 인간과 사자의 평화로운 관계는 지금 비극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또 다른 미국인 치과의사가 집에 돌아가 행복감에 젖어 위스키를 따르고 각얼음을 떨어뜨리고 있을 때, 새끼 사자들은 죽음을 맞고 있는 것이다.

브렌트 스타펠캄프/황게국립공원 사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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