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12 16:25
수정 : 2016.09.12 20:21
대법원, 단식투쟁 수감자들에 “강제급식 합법” 판결
팔레스타인 ‘테러 용의자’ 재판 없는 ‘행정구금’ 도마
의사협회 “의료윤리 위배, 강제급식 시행 거부”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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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이스라엘 북부 도시 아플라의 한 병원 앞에서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권자들이 이스라엘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다 병원으로 이송돼 강제급식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풀라/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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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법원이 단식투쟁 중인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 대한 강제급식을 허용한 법안이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이스라엘 의료인들조차 반발해온 개정 법안을 대법원이 지지하면서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더욱이 단식투쟁 수감자 대다수가 재판도 없이 이른바 ‘행정구금’ 결정으로 사실상 불법감금된 이들이어서, 이스라엘의 행정구금 실태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11일 단식 수감자들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투입하는 것을 허용한 지난해 7월 개정 법안이 “국내법과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결정했다고 현지 일간 <하레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스라엘 의사협회와 인권단체들이 문제의 법 개정안을 무효화해달라는 청원을 기각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환자들의 권리에 관한 법률이 건강이나 생명이 위험 상태에 이른 단식 수감자들에게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단식 수감자들은 “환자가 아니라 항의 수단으로 자신을 고의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는다”는 이유다. 대법원은 또 “국가는 수감자들의 안전뿐 아니라, 수감자 단식투쟁 같은 사건들로 위험해질 수 있는 시민들의 안전에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의사협회와 인권단체들은 자국 정부의 관련법 개정 추진에 강력히 반대하며 법안 통과 시 불복 운동을 예고했다. 단식 중인 사람에게 강제급식을 하는 것은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자칫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다. 레오니드 아이델만 의사협회장은 “이건 의료윤리가 법보다 명백히 앞서는 경우”라며 “강제급식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강제급식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의료인들에게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중도 좌파 정당인 메레츠당의 타마르 잔드베르그 의원도 “개정 법안이 잔인하고 비윤리적이며 어떤 의사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 대법원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며 “강제급식은 인권 침해이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들에 대한 ‘강제급식’의 근원은 ‘행정구금법’이다. 이스라엘은 이 법을 근거로 팔레스타인 테러 용의자들을 재판 없이 가두고 있다. 6개월 단위로 구금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 불법감금된 팔레스타인인들이 항의 표시로 ‘단식투쟁’을 벌이고, 이스라엘 정부는 이에 ‘강제급식’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12일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는 약 70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있으며, 그중 700명가량이 행정구금 수감자”라고 전했다. 행정구금은 20세기 중반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때 도입돼 이스라엘이 이어받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수사당국이 증거를 수집하는 동안 용의자를 붙잡아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과 국제인권단체들은 그 불법성과 인권 침해를 비난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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