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모로코 최북단도시 테투안의 국경마을 오우에드 다오우예트지역에 스페인과 모로코의 병사들이 철책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지키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
피스보트 세계를 가다
아프리카 대륙의 끝자락에서 제법 험준한 산맥을 만났다. 치솟아 오른 대지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일 것이다. 15일 오후 카사블랑카에서 차량으로 5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모로코 최북단 도시 테투안은 벌판 뿐이던 남부 지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풍경이 바뀌면서 사람 살이도 달라지고 있었다. 프랑스어와 아랍어 일색이던 간판은 테투안 시내로 들어서자 스페인어에 일부 자리를 내준 채 였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가운데 유럽연합 번호판은 단 차량이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500여년 전부터 아프리카 북동쪽 끝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령 세우타가 멀지 않았다는 표식이다. 세우타와 만나는 국경지역 프니데크에 다가서자 ‘유럽 땅’이 한 눈에 들어왔다.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푸른 지중해를 곁에 두고 저만치 언덕 위에는 하얀색 집들이 그림처럼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앞에서 아프리카의 빈곤과 유럽의 풍요 사이를 가로 막고 들어선 국경 검문소가 왜소해 보였다. 짧게는 5~6개월에서 길게는 2~3년씩 목숨을 내걸고 사하라 사막을 건너온 불법 이민자들의 행렬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인 것처럼 느껴졌다. ‘약속의 땅’ 유럽땅 밟으려 목숨건 입국시도바다서든 뭍에서든 그들 맞는 건 죽음·추방뿐
비극 되풀이속 관련국선 ‘단속’ 외 대책 없어
대물림 가난 탈출여정에도 절망의 장벽이…
|
그는 “내 동생도 지난 1998년 고무보트를 타고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해 지금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목숨을 건 시도 끝에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한 그의 동생은 막노동을 전전하며 프랑스를 거쳐 네덜란드까지 흘러 들었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 여성과 결혼해 ‘유럽 여권’을 손에 쥐게 됐다고 했다. 연신 음식을 권하던 그는 “8남매의 맏이라 집을 떠나기 쉽지 않지만, 기회만 닿는다면 나도 언젠가는 유럽으로 가고 싶다”는 쓸쓸한 포부를 밝혔다. “지난 7월말 불법 이민자 25명이 소형 고무보트를 타고 모로코 해변을 떠났다. 그들이 라스 팔마스 해변에 도착하는 데는 20일이 걸렸다. 바다를 떠도는 동안 14명이 익사했고, 구조된 이들 가운데 2명은 병원으로 옮겨진 직후 숨을 거뒀다. 나머지 9명은 기력을 회복한 뒤 구금시설로 옮겨졌다가 한 달여 만에 모두 추방됐다.” 18일 오후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최대 섬인 그랜드 카나리아의 라스 팔마스에서 만난 구호단체 카리타스의 카르멘 모즈쿠데 활동가는 “이런 식의 비극이 수없이 되풀이 되고 있지만, 관련국 정부에선 단속을 강화하는 것 외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모로코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는 바닷길이 점점 거대한 해상 공동묘지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모로코 서쪽 해안가에서 카나리아 제도를 향하다 스페인 당국에 적발된 불법 이민 사례만 9800여건에 이른다. 또 북쪽 해안가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유럽 땅으로 향하다 단속에 걸린 사례도 1만여건을 넘어선다. 끝없이 이어지는 경제난민의 행렬은 국경 철조망을 높이거나, 해상 경계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끝없이 대물림 되는 가난과 절망 뿐인 현실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불법 이민의 길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온 가족의 꿈과 희망으로 만들어진 몇 푼 여비로 길게는 수천km를 여행한 끝에 ‘약속의 땅’에 도착한 뒤에도,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고달프기만 하다. 카리타스 지원센터에서 만난 모로코 출신 카리마(가명·27)는 3차례 고무보트에 생명을 내맡긴 끝에 얼마 전 라스 팔마스에 도착했다고 했다. 천형 같은 가난보다 두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젊은 어머니를 겁 없이 바다로 나서게 했다. 하지만 도착한 지 한 달여 만에 그는 경찰에 적발돼 구금시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실신한 그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자신의 몸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환자라는 이유로 강제출국은 면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테투안·라스 팔마스/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죽음 헤쳐나와도 끝없는 고난
작년 공식 통계로만 289명 목숨 잃어
범죄·수비대 등 일상적 폭력에 무방비 세계인권선언은 ‘이동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출국의 자유’가 곧바로 ‘입국의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안달루시안 인권협회(APDHA)’가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한해 동안 유럽 땅을 향하다 목숨을 잃은 불법 이민자는 모두 289명으로 집계됐다. 고무보트로 모로코 해안에서 카나리아 제도를 향하다 숨진 이들만 137명이나 됐다. 사하라 사막을 넘어 모로코로 향하는 여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도 117명에 이른다. 사망원인을 유형별로 보면 해안을 벗어나다 보트가 뒤집히면서 숨진 경우가 103명으로 가장 많지만, 해안 경비대가 이른바 ‘구조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은 이들도 71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통계는 추적이 가능한 사례에 국한된 것이어서, ‘모로코 불법이민 피해자 가족협회(AFVIC)’ 같은 단체는 적어도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란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국경지대에 도착해서도 불법 이민자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국경없는 의사회(MSF)가 지난 2003년부터 올 3월까지 2년여 동안 모로코 북부 국경 일대에서 9350명을 상대로 벌인 조사자료를 보면, 불법 이민자들은 일상적인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인신매매(19%)나 범죄조직(10%)에 의한 폭력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상당수였지만, 모로코(52%)와 스페인(15%) 국경 수비대의 폭력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라스 팔마스/정인환 기자
|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