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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4 17:06 수정 : 2016.03.24 23:01

벽 소유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의 그라피티 벽 철거 계획에
“‘아랍의 봄’ 상징하는 문화적 유산” 이집트 예술가들 반발

이집트 대통령의 얼굴은 원숭이처럼 묘사됐다. 최루탄에 맞아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시위대들과, 가족을 잃고 거리에 앉아 통곡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벽 위에 그려졌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음식을 먹고 있는 소년의 모습도 한쪽 벽면을 채웠다. 카이로 중심부, 타흐리르 광장으로 이어지는 150m의 벽에 채워진 그라피티들은 최루탄이 매캐했던 4년 전 ‘아랍의 봄’을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무함마드 마흐무드 거리의 벽에 그려진 벽화. 페이스북 갈무리

그라피티가 가득 그려진 카이로 무함마드 마흐무드 거리의 벽. 현재 이 벽의 절반 정도는 철거된 상태다. 영국 <가디언>은 2011년 민주화 시위 당시 혁명의 상징이 된 그래피티 벽을 철거한다는 계획에 이집트 예술가들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무함마드 마흐무드 거리의 벽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페이스북 갈무리

그라피티 벽 철거 계획은 지난해 11월 벽을 소유하고 있는 카이로 아메리칸대학(AUC)이 발표했다. 이 대학은 오래된 건물을 무너뜨리고 공원과 문화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그라피티 벽의 40% 정도를 철거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리사 안델슨 아메리칸대학 전 총장은 “오래된 대학 건물을 재개발하는 것은, 타흐리르 광장을 포함해 카이로 시내를 전면적으로 재개발하려는 정부 계획 중 하나”라며 사실상 벽을 철거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예술가들은 대학의 결정에 그라피티 벽을 보존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그라피티가 본질적으로 자주 바뀌고 덧씌워지는 예술 형식이라 하더라도, 아랍의 봄을 상징하는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대학은 벽을 철거한 뒤 그라피티 작품들을 사진으로 남겨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 밝혔지만, 이집트 활동가인 와일 이스칸다르는 “(이는) 마치 이집트 신전의 벽화 사진을 찢고, 신전을 부순 다음에 사진 전시회를 하자는 것과 같다”고 비꼬는 등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무함마드 마흐무드 거리의 벽에 그려진 벽화. 페이스북 갈무리

그라피티 벽을 철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이집트 정부의 시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3년 반시위법이 통과된 뒤, 이집트 정부는 거리로 나오는 시위대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반정부 운동의 근거지가 된다는 이유로 예술 공간들을 폐쇄하고, 유명 소설가를 공중도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등 예술가들에 대한 탄압도 이어졌다. 이집트 역사학자인 루치에 리조바는 “도시를 정화한다는 정부의 계획은 두 종류의 사람들을 향해 있는데, 바로 ‘행상인’과 ‘시위대’들이다. 이들은 모두 카이로 시내를 ‘더럽히는 사람들’이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이집트 정부를 비난했다.

‘더러운 사람들’을 치우려는 정부의 의도는 4년 전 혁명의 기억을 지우는 것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카이로 시내의 그라피티 제작 과정을 기록해온 소라야 모라예프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남은 증거인 그라피티를 없애고 있다”며 “만약 당신이 지금 타흐리르 광장에 간다면, 2011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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