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09 19:49
수정 : 2016.03.0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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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4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 구타에서 남성 한 명이 건물 잔해가 쌓여 있는 거리를 아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사진은 국제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이 시리아 내전 발발 5주년을 맞아 보고서를 내면서 공개한 것이다. 구타/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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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시리아 내전 5년’ 보고서
“먹을 게 없을 때는 풀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이건 먹을 수 없는 풀이잖아’라고 했지만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 풀은 먹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제가 먼저 풀을 뜯어 먹었죠. 아이들이 매일 말라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어요.”
시리아 중동부 데이르 에조르 주의 한 마을 주민 하산의 하소연이다. 국제 어린이 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9일 시리아 내전 5주년을 맞아 발간한 <포위된 유년기- 시리아 봉쇄 지역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에 놓인 현지의 참상을 전했다. 최소 25만명의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사실상 ‘하늘만 열린 감옥’으로 변한 봉쇄 지역에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고 있으며, 교전 세력은 민간인을 전쟁 무기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봉쇄 지역의 어린이와 가족 126명과의 밀착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조사 대상 주민 중 32%는 하루 한 끼도 못먹을 때가 있다고 답했으며, 24%는 어린이가 식량 부족으로 숨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학교와 어린이 보호시설이 파괴된 틈을 파고든 무장단체들이 배고픔과 절망에 지쳐가는 어린이들을 급여와 식대 지원을 미끼로 전투대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유엔은 현재 시리아 내 봉쇄 지역이 18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국경없는의사회는 봉쇄 지역 주민이 최대 19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현지의 한 구호 활동가는 “마을 곳곳에서 저격수들이 아무에게나 총을 쏘고, 길거리엔 지뢰가 널렸다. 검문소에선 식량·의약품·연료 등 모든 생필품 반입을 막고,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를 포함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집과 학교가 폭격으로 폐허가 됐고, 아이들이 굶주리는데 시장은 텅 비었다. 21세기라지만 이곳은 마치 100년 전 같은 풍경이다”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날 보고서와 별개로 성명을 내어, 최근 유럽연합(EU)과 터키가 난민 추방과 통제에 합의한 정상회담 결과에 “깊은 실망감”을 표시했다. 성명은 “전쟁과 고문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어린이와 그 가족이 유럽에 망명할 기회를 빼앗는 결정은 국제법과 난민법에도 위배된다”며 “난민의 합법적 유럽 입국을 조건부로 만들려는 발상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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