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산자니-모인 지지율 8%P차로 좁혀져
2차 투표 가능성↑…“미와 관계개선” 목청 17일 이란 대선은 예상 밖의 안개속 접전으로 변해가고 있다. 당초 압승이 예상됐던 ‘실용적 보수파’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71) 전 대통령에 도전하는 개혁 성향의 무스타파 모인(54) 전 고등교육장관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다, 강경 보수파 후보 일부도 막판 사퇴를 선언했다. 이란 역사상 최초로 1차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투표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 증가=최근 여론의 추이를 보면, 라프산자니 후보의 지지율은 5월 말 34%에서 6월 초 28%로 하향곡선을 그린 반면, 모인 후보의 지지율은 10%에서 14%로 높아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란 국영 통신인 〈IRNA〉가 지난 11일 발표한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라프산자니와 모인이 각각 27.1%, 18.9%를 차지했고, 강경 보수파인 모하마드 바케르 칼리바프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16.5%의 지지율로 모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게다가 15일 강경 보수파인 모흐센 레자이 후보가 “고위 성직자들의 뜻에 따라” 보수파 표 분산을 막기 위해 중도 사퇴해 보수파의 결속력도 좀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젊은 표심 어디로?=6700만 인구 중 절반 이상이 25살 이하이고 투표 연령도 15살 이상이어서, 후보들은 이들 엄청난 젊은 표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어려운 경제, 하타미 정권의 개혁 실패로 젊은층의 무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란 역사에서 대선 결과가 이렇게 예측불가능했던 적도 없었고 유권자들의 불만이 이토록 컸던 적도 없었다”고 전했다. 핵 개발을 둘러싼 국제적 압력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 경제난 극복이 발등의 불로 다가온 상황에서 보수·개혁파 모두가 “개혁”을 외쳤다. 라프산자니는 14일 〈시엔엔〉과의 인터뷰에서 “25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이란-미국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때가 됐다”고 말하는 등 이 위기상황을 돌파할 ‘구원자’임을 내세우고 있다. 〈비비시〉는 모든 후보가 핵개발의 의지는 드러내면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금기’를 공약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보수파 후보들의 선거운동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등 ‘사회적 금기’도 깨졌다고 전했다. 팽팽한 긴장=선거를 이틀 앞둔 15일까지 폭탄공격이 잇따르고,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란이 1998년까지 플루토늄 재처리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나라 안팎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15일 남동부 자히딘의 한 식당에서 폭탄이 터져 3명이 다치는 등 이란 전역에서 최근 5일 사이 모두 10건의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국가보안최고위원회는 반정부 세력의 선거 방해라고 비난하는 반면, 모인 후보는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투표율을 낮추고 강경파 후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보수파의 공작이라고 비난했다.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 보고를 앞두고 15일 언론에 공개된 피에르 골드슈미트 원자력기구 사무차장의 연설 초안을 보면, 이란은 93년 이후에는 플루토늄 재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해 왔지만, 지난달 말 98년에도 플루토늄을 추출했음을 시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하타미 ‘무능한 개혁’ 개혁파 민심 두갈래로 “선거 불참” “그래도 개혁파에”…실업률 해소 등 관건 이번 대선과 더불어 ‘이란의 첫 개혁파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62)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성직자 출신의 하타미 대통령은 1997년 그의 개혁 약속에 희망을 건 젊은층, 특히 여성들의 지지를 받아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패쇄사회와 통제경제를 통해 권력을 독점해온 보수적 성직자들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그에게 모였다. 그러나, 2001년에도 재선되며 지난 8년 동안 이란을 이끌었던 그는 이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떠나게 됐다. 보수파는 종교, 사법, 경찰 기구를 장악한 채 그의 모든 개혁정책을 막아 왔다. 개혁파들은 보수파들에게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높은 지지율을 개혁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하타미 정부의 무능에 점점 더 실망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 초기 개혁파 진영은 현 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기 위해 선거에 불참해야 한다는 쪽과 개혁파 후보에 투표해야 한다는 쪽으로 팽팽히 갈렸다. 그러나, 막바지로 가면서 개혁세력이 무스타파 모인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쪽으로 조금씩 마음을 바꾸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한다.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선출되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이 절대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를 좌우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개혁파들의 변화 요구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슬람공화국 안에서의 온건 개혁을 추구한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마저도 번번이 좌초되면서 훨씬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도 떠오르고 있다. 급진파의 대표적 학자인 압둘 카림 소루쉬는 이슬람 정교일치 개념에 도전하고 성직자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이슬람의 루터’로 불린다. 침체된 경제와 치솟는 실업률, 핵 개발을 둘러싼 국제적 압력, 미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 등 이란의 심각한 위기 상황은 개혁파에게 기회이자 한계일 수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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