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파드 국왕 사망땐 압둘라 왕세제 왕위계승
압둘라 고령…군·경 장악 형제들 쿠데타 가능성 장막 속에 가려져 있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실상이 공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세계 원유 공급의 고삐를 쥐고 있는 사우디 왕실의 불안한 후계구도와 사우디의 복잡한 국내 정세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와병 중인 파드(82) 사우디 국왕의 세번째 부인이었다가 이혼을 당했다는 요르단 출신의 자난 하브(57)가 낸 위자료 청구소송이 영국 법정에서 공개 재판으로 진행되게 됐다고 〈비비시〉 등이 14일 보도했다. 런던에서 초호화 생활을 해온 하브는 지난해 1월 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 재판은 외국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로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11월부터 시작될 2심 재판부는 재판 공개를 결정했다. ‘오일머니’로 엄청난 부를 누리면서 수십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는 사우디 왕족들의 비밀이 법정에서 공개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파드 국왕은 9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 왕자의 난?=국왕이 쓰러진 뒤 이복동생인 압둘라(82) 왕세제(왕의 동생 가운데 왕위세습 예정자)가 10년째 사우디를 실제로 다스려 왔기 때문에 파드 국왕이 세상을 떠난다면, 왕세제가 왕위에 오르고 술탄 국방장관이 왕세제 자리를 물려받게 돼 있다. 그러나 압둘라 왕세제도 이미 고령인데다, 사우디 내부의 사회·정치적 갈등과 미국과의 관계 등이 얽히면서 왕실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압둘라는 왕자들 중 가장 검소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아랍과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비교적 친 서방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또한, 개혁세력을 조심스럽게 지원하고 있다. 왕세제가 집권하면 왕족 부패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파드 국왕의 ‘7형제’는 세계적 명의를 초빙해 가며 국왕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왔다. 특히 서방 언론들은 군과 경찰을 장악한 7형제가 왕세제를 몰아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 치솟는 반 왕정·반미 정서=커져가는 빈부 격차와 경제침체, 불편해지는 미국과의 관계도 사우디 앞날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아랍부족주의와 와하비즘(코란의 순수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보수주의)이 결합해 세워진 사우디는 헌법도, 의회도 없이 왕가가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있다. 국가경제는 대부분 원유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1970년대 2만6000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최근 8000달러대로 떨어졌다.
왕족들의 호화로운 생활과는 대조적으로 늘어가는 빈민층과 실업자들은 이슬람주의를 받아들이며 왕정 타도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또 석유 공급과 중동 친미정권 유지를 위해 사우디 왕정과 굳게 손을 잡아온 미국을 비판하면서 반미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은 나이프 내무장관이나 술탄 국방장관 등 왕가의 보수파들이 국내 불만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은밀히 이슬람세력을 지원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결국 사우디 왕가가 개혁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는 사우디의 미래에 너무나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전세계 매장량의 24%인 2628억배럴의 원유를 가진 사우디의 정정 불안으로 원유 생산에 문제가 생긴다면 국제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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