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카르자이대통령 요구 거부
기지이용권 보장 양해각서 체결 미국이 자기나라 군대의 아프가니스탄 장기주둔 근거를 마련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23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전략적 동반자관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전날 이라크내 미군기지 통폐합 계획이 밝혀진 데 이어, 이날 아프간 장기주둔의 합법적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중앙아시아와 중동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전략적 벨트가 뚜렷해지고 있다. 100여개의 이라크내 미군기지는 탈릴, 발라드, 에르빌(또는 카이야라), 알 아사드 4곳으로 통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프간은 중동과 중앙아시아가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곳의 미군 장기 주둔은 이란과 중국 서부, 새로운 에너지 부국으로 떠오른 중앙아 국가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상회담 뒤 공동발표 형식으로 나온 ‘미-아프간 전략적 동반자’ 양해각서는 미군의 주요 아프간 기지 이용권을 계속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로써 미군은 바그람과 칸다하르 공군기지 등을 계속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아프간에는 1만8천여명의 미군과 8천여명의 연합군이 주둔하며 탈레반과 알 카에다 세력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아프간인 수감자들을 되돌려 보내고 미군이 아프간에서 벌이는 작전에 대해 아프간 정부가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카르자이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격렬한 반미시위 와중에 워싱턴을 방문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귀국 뒤 정치적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은 카르자이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정부의 미군 통제권 확대문제에 대해 “미군 지휘관들은 아프간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해나갈 것이지만, 미군 병사들은 우리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다”고 못박았다. 미군 관할 구금시설에 갇힌 아프간인들을 아프간 정부에 넘기라는 요청에 대해서도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이 (테러 용의자들을) 먹이고 재우고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다음에 그렇게 하겠다”고 거부했다. 아프간에선 최근 관타나모기지에서 미군 조사관들이 〈코란〉을 모독했다는 〈뉴스위크〉 보도가 알려지면서 격렬한 반미 시위가 벌어져 지금까지 16명이 숨졌다. 또 지난주에는 아프간 바그람에 있는 미군 수감시설에서 미 조사관들의 가혹행위로 아프간인 2명이 숨진 사실이 폭로돼 대미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워싱턴에 오기 전엔 부시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철저한 처벌을 요구한 것도 이런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선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여러 번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수감자 학대에 대해선 “슬프게 생각하지만, 이런 몇몇 개인의 행동이 미국 정부나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박민희 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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