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드 아바스(가운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당선자가 11일 당선 뒤 처음으로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라말라/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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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선거 전후 팔레스타인 현장/홍미정 외대교수
[6판]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야세르 아라파트의 뒤를 이어 팔레스타인을 이끌 수반으로 당선됐다. 그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통해 국가창설을 이루려 하고 있고, 이는 중동 정치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선거감시단으로 이번 선거를 지켜본 팔레스타인 연구자 홍미정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교수가 현지에서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전해 왔다.
2002년 이후 3년만에 다시 찾은 동예루살렘 거리는 건물도 사람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를 앞두고 이곳에 도착한 지난 5일 아침, 동예루살렘 아랍인 지구 거리에서는 선거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하마스 대변인이자 예루살렘대학 교수인 자밀 하마미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한테는 ‘똑같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장인 마흐디 압둘 하디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이 이번 선거에 얼마나 냉소적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가 있는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로 향하는 택시에서 운전사에게 지지후보를 묻자 “무스타파 바르구티를 지지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무드 아바스는 ‘도둑’이기 때문”이란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7일에도 분위기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한산했다. 팔레스타인 시민운동가 칼리드 알리 나지프는 “당국은 데모 등 문제가 일어날까봐 사람들이 거리에 모이지 않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파타당 적극적 후원 거리에 붙은 벽보는 대부분 아바스의 것이었고, 일부는 야세르 아라파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아바스의 모습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아바스 개인보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파타당의 역할이 훨씬 컸다. 많은 사람들은 아라파트가 창설한 파타당을 지지하고, 파타당은 적극적으로 아바스를 후원했다. 가끔씩 보이는 바르구티의 벽보는 아바스에 도전하는 경쟁자가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간부인 파티 플레펠 박사는 “아바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이스라엘 검문소를 제거할 것이며, 도로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성을 강화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난민출신이며 사회주의자인 바삼살히를 지지했지만, 아바스의 당선으로 어쨌든 팔레스타인 상황은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예루살렘 대학의 역사학 부장 무타젠 알나셈 교수 역시 이번 선거를 통해 아바스가 내부 변화와 개혁을 가져올 것이며, 민주주의가 성취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는 오슬로협상의 결과에 반대해서 일어났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오슬로협상과 중동평화 로드맵을 주도한 아바스를 선택하는 것은 오슬로협상과 로드맵에 찬성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인가?”하고 묻자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며,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주도해왔고, 현재 이스라엘은 아바스를 지지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검문소 제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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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일본 감시단원들과 함께 라말라 곳곳의 선거구를 살펴보았다. 일본 정부는 이번 선거에 23명의 감시단원을 파견했으나 우리 정부는 한명도 파견하지 않았고, 나는 개인적인 신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투표소에서 평온하고 질서있게 선거가 진행됐지만 거리에서는 가끔씩 아바스 선거원들이 자동차에 확성기를 달고 깃발을 휘날리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분명히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한 팔레스타인 선거감시원이 “그들은 파타당원”이라고 말했다. 선거가 끝난 뒤 우연히 전날 방문했던 알나셈 교수와 부인을 만났을 때 그들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는 선거에 참가했음을 표시해주는 잉크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툴카렘이 주소지인 그들은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통행을 제지당해 투표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검문소들을 통제했다. 성과 없을땐 ‘봉기’ 가능성 점령에서 비롯된 팔레스타인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분명한 대안이 없다. 선거일인 9일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칸 유니스의 난민촌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번 선거조차도 팔레스타인의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그들의 손으로 선택한 정부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그 프로그램의 목적일 수도 있다. 희망과 냉소가 교차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수립된 정부가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계속 정권교체를 이루어나가면서 점령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방법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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