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반 시리아 야당세력의 시위로 물러났던 오마르 카라미 전 총리가 9일 만에 다시 총리로 임명되는 등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지원한 이른바 ‘백양목 혁명’이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친 시리아계인 카라미 전 총리는 9일 128명의 의회의원 중 71명의 지지를 받아 총리 후보로 추천됐으며, 에밀 라후드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의원 다수가 추천한 그를 새 총리로 공식 임명했다고 <에이피통신> 등이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카라미 전 총리가 야당세력까지 포함한 거국내각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8일 시아파 정치조직 헤즈볼라가 주도한 시위에 50만여명이 참가해 베이루트 도심을 가득 매웠던 데 이어 카라미가 총리에 재임명됨으로써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지원한 ‘백양목 혁명’은 거센 반격에 부닥치게 됐다. 야당 세력들은 카라미 재임명에 반발하고 있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 미국 행정부는 계속 시리아군과 정보기구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친 시리아 내각 퇴진을 주도했던 드루즈파 야당 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는 “카라미 재임명은 불행하게도 레바논의 위기만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야당 의원인 시몬 카람은 “레바논과 시리아 정보기구가 이번 일에 개입했다”고 비난했다고 레바논 일간 <데일리 스타>가 보도했다. 그러나 레바논 내부에서는 미국 등의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으며, 야당 세력은 카라미의 복귀에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동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9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를 통해 레바논 최대 종파인 시아파들 사이에서 미국의 지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스라엘-레바논 평화협정 강요 등 친 이스라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이 “레바논 국민들은 외세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을 때 많은 레바논인들에게 외세는 시리아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로 받아들여진다고 전했다. 야당 세력은 시위를 계속하고 있지만, 드루즈파와 이슬람 수니파의 참여는 줄고 기독교 마론파가 주류를 이루는 등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0일 미국이 헤즈볼라를 레바논의 정치 주류로 인정하려는 프랑스와 유엔의 노력에 마지못해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정부 관리의 말을 따 보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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