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4 17:41
수정 : 2019.12.2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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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스키드로에서 23일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가 열려 음식 등을 받으려는 홈리스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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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급등 캘리포니아, 홈리스 16% 증가
LA선 차량 생활하는 사람만 1만6천명 달해
비영리 단체, 경비원이 지키는 주차장 제공
강도·성폭행 걱정 덜고 홈리스 탈출 새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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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스키드로에서 23일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가 열려 음식 등을 받으려는 홈리스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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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 운전기사 로런 쿠시(36)는 평소 자신의 준중형차 도요타 프리우스를 티끌 하나 없이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이 차가 돈벌이 수단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밤이면 제 몸 하나 누일 ‘집’이 되기도 해서다.
쿠시는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수많은 여성 ‘홈리스’(노숙자) 중 한 사람이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 임대료 중간값이 2350달러(274만원)에 이르는 로스앤젤레스의 살인적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앉은 것이다. 키 170㎝인 그녀에겐 준중형차 뒷좌석은 발 한번 제대로 뻗기 힘들 정도로 좁다. “매우 불편하죠. 밤마다 몇번씩 깨서 뒤척이기 일쑤죠.”
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지난 22일 올해 미국 전역의 홈리스가 56만8천명으로, 지난해보다 2.7%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높은 집값으로 악명 높은 캘리포니아에서만 홈리스가 2만1306명(16.4%)이나 급증해 15만명 선까지 치솟은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의 홈리스는 6만명 수준으로, 이 가운데 1만6천명이 쿠시처럼 차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시엔엔>(CNN) 방송이 23일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보다 집값 상승세가 더 가파른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차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늘어, 최근 빈민가인 베이뷰헌터스포인트에 홈리스들의 낡은 대형 레저용 차량(RV) 여러 대가 거리를 점령하는 진풍경까지 펼쳐지고 있다.
집세를 절약할 수 있다곤 해도 차 안에서 산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화장실은 물론 씻을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 대부분의 도시는 노숙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매일 밤 주차된 차 창문 밖으로 온갖 소음과 위협이 몰려든다.
쿠시가 노숙생활 탈출이라는 희망을 꿈꾸게 된 건, 1년 전 비영리단체 ‘세이프 파킹 엘에이’가 운영하는 주차장에 머물기 시작하면서다. 이 단체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홈리스들이 안전하게 차를 대고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경비원을 고용해 한밤중 주차장을 안전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화장실 등 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머무는 홈리스들에게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체육시설 등의 서비스는 물론, 직업 관련 프로그램도 연계해주고 있다.
2004년 샌타바버라에서 처음으로 이런 공간이 마련되기 시작한 이래, 임대료 상승이 가팔라지면서 샌디에이고와 오클랜드, 새너제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전역에 이런 안전주차공간이 마련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지난해 3월 한인타운의 한 교회가 공간을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8곳에 120개의 주차공간이 마련됐다.
쿠시는 이곳을 통해 저소득층 여성을 위한 16주짜리 집중 컴퓨터 코딩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시엔엔>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곳에 머물면서부터 한밤중에 강간이나 강도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며 “언젠가는 더 나은 직업을 얻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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