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30 17:55
수정 : 2019.08.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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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달러 강도죄로 삼진아웃법이 적용돼 감형 없는 종신형을 살던 앨빈 케너드(가운데 죄수복 차림)가 29일 형량 재심 법정에 카를라 크라우더 변호사(맨 오른쪽)와 함께 출석해 판사의 결정을 듣고 있다. 앨빈의 가족이 촬영한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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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빈집털이 전과로 ‘감형 없는 종신형’
‘삼진아웃법’ 개정에도 소급적용 안돼 절망
감형 판사 “50달러 범죄 종신형은 이상하다”
비슷한 사례 250여명, 변호사 없이 수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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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달러 강도죄로 삼진아웃법이 적용돼 감형 없는 종신형을 살던 앨빈 케너드(가운데 죄수복 차림)가 29일 형량 재심 법정에 카를라 크라우더 변호사(맨 오른쪽)와 함께 출석해 판사의 결정을 듣고 있다. 앨빈의 가족이 촬영한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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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가게에서 단돈 50달러를 빼앗은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수감자가 감옥살이 36년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앨빈 케너드(58)가 주인공이다. 배가 고파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탈옥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형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장발장을 연상케 한다. 장발장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인 반면, 케너드는 실존하는 ‘미국판 장발장’인 셈이다.
36년 전 ‘1급 강도죄’로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앨라배마주 베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케너드가 감형돼 수일 안에 석방을 앞두고 있다고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 등이 29일 보도했다. 1983년 당시 22살 청년이던 케너드는 동네 빵 가게에서 50달러75센트(약 6만1500원)를 빼앗았다가 체포됐다. 주머니칼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차례의 ‘비폭력 재산 범죄’ 전력이 평생 운명을 갈랐다.
앞서 1979년, 케너드는 사람이 없는 주유소를 털었다가 한꺼번에 세 건의 ‘2급 절도죄’로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다. 4년 뒤 케너드가 빵 가게에서 강도 행각을 벌일 당시 앨라배마주는 ‘삼진 아웃법’으로 불리는 ‘상습 중범죄자 처벌법’을 시행 중이었다. 판사는 이미 네 번째 범죄 혐의가 인정된 피고 케너드에게 ‘감형 없는 종신형’이 아닌 다른 형량을 선고할 선택지가 없었다고 한다. 가벼운 처벌을 받은 한 차례의 빈집털이 전과가 두 번째 범죄를 평생 옥살이로 몰아넣은 셈이다.
앨라배마주의 삼진아웃법은 과도한 형량으로 논란을 낳으면서 2000년대 초에 개정됐고, 판사들은 선고 형량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개정법이 소급 적용을 인정하지 않았던 까닭에 케너드의 종신형 선고는 그대로 유지됐다. 희망이라곤 없는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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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달러 강도죄로 삼진아웃법이 적용돼 감형 없는 종신형을 살던 앨빈 케너드(가운데 죄수복 차림)가 29일 형집행 정지로 석방이 결정된 뒤 법정을 떠나고 있다. 앨빈의 가족이 촬영한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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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8살이 된 케너드의 재선고를 이끈 것은 앨라배마주 제퍼슨 카운티 법원의 데이비드 카펜터 감형 심사 순회판사(Cutoff Circuit Judge)가 우연히 케너드의 범죄 기록을 들여다 보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였다. 케너드의 변호인이자 ‘법과 정의를 위한 애플시드 센터’ 사무국장인 카를라 크라우더 변호사는 <에이비시> 방송에 “이번 건에서 판사는 누군가가 50달러 강도죄로 감형 없는 종신형을 복역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하게(odd) 보이는지에 주목했다”며 “판사는 (감형 결정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최근의 형법 기준에 따라 케너드의 형량이 결정됐다면, 케너드는 이미 20년 전에 가석방 자격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너드의 복역 태도가 호평을 받은 것도 감형 석방 결정에 한몫을 했다. 빌 노스 지방검사는 “30여년전 (감옥 생활에) 적응 문제를 빼면 케너드는 꽤 모범적인 수형자”라고 평가했다. 카펜터 판사의 판결이 내려지자 법정에 모인 케너드의 가족과 친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고, 일부는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크라우더 변호사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삼진아웃법의 선고 형량 개정이 소급적용되지 않은 까닭에 지금도 과도한 형량을 선고받고도 변호사를 구하지 못한 채 수감중인 복역자가 25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날 죄수복 차림에 손과 발에 쇠고랑이 채워진 채 법정에 나온 케너드는 판사에게, 석방되면 목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케너드는 36년 전 수감되기 전에 목수와 건축 인부로 일했다. 공교롭게도 판사의 성씨인 ‘카펜터’는 영어로 ‘목수’라는 뜻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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