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5 16:43
수정 : 2019.08.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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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미국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민족주의 세력의 집회 장면. 이들은 다음날 행진에서 ‘유색인종과 유대인들은 백인들을 대체할 수 없다’는 구호를 내걸고 행진하다, 이에 항의하는 여성을 자동차로 치어 숨지게 했다. 샬러츠빌/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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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내테러 850건 중 40% 연관
연계조직 없어 사전 적발 어려워
에잇챈 예고 뒤 총격 올해만 3건
게시판 만든이도 “사이트 폐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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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미국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민족주의 세력의 집회 장면. 이들은 다음날 행진에서 ‘유색인종과 유대인들은 백인들을 대체할 수 없다’는 구호를 내걸고 행진하다, 이에 항의하는 여성을 자동차로 치어 숨지게 했다. 샬러츠빌/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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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내 나라가 히스패닉의 침공으로 문화적, 인종적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지난 3일, 미국 텍사스주의 국경 도시 엘패소에서 총기를 난사해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 용의자 패트릭 크루시어스(21)는 사건 20분 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에잇챈’(8chan)에 이런 내용이 담긴 4쪽짜리 성명서를 올렸다. 성명에는 ‘비백인’ ‘이민자’들에 대한 적의를 바탕으로 한 백인 민족주의적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최근 미국 내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테러의 제1주범으로 백인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이에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사법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4일 보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백인 민족주의를 비롯한 극단적인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감화된 백인 남성들에 의한 국내 테러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내 테러 사건 850건 가운데 40%가 인종주의가 동기가 된 폭력적인 극단주의와 관련됐으며, 이들 사건 대다수가 백인 우월주의 세력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테러를 사전에 적발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엘패소 총기 난사 용의자 등이 ‘외로운 범죄자’라고 불릴 만큼, 특정 조직과의 연계나 지도 없이 총기를 이용해 어느 날 갑자기 단독으로 범행에 나서는 양상을 보이는 탓이다. 최근 이들에 의한 국내 테러가 증가하면서, 2001년 9·11테러 이후 대테러 활동의 초점을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맞춰왔던 미 사법 당국은 당혹감 속에 최근 서둘러 대테러 대책을 수정하고 있다는 게 <월스트리트 저널>의 설명이다.
앨패소 총기 난사 용의자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 최근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주로 무료·익명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에잇챈’이라고 불리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온상으로 꼽힌다. 에잇챈에 범행을 예고한 뒤 실제로 총격을 일으킨 사건만 올해 들어 세번째다. 엘파소 사건을 비롯해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 총기 난사 사건과 한 달 뒤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 파웨이 시너고그(유대교 회당) 총기 난사 사건도 이 게시판에 사건 ‘예고’가 올라온 직후 일어났다.
에잇챈은 국내 극우적 게시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레드릭 브레넌이 2013년 ‘검열 철폐·표현의 자유 실현’이라는 이상주의를 내걸고 만든 이 사이트는 초기엔 막힘없는 유머와 일상 소재를 담은 다양한 글들이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 공고나 회원 모집 글이 올라오는 곳으로 전락했다. 여기서 생산된 각종 인종주의적 혐오글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타고 널리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 게시판을 만든 브레넌조차 “이제는 이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브레넌이 한때 ‘표현의 자유’란 유토피아로 불렀던 에잇챈이 대량 총기 난사범들의 확성기가 돼 버렸다”고 평가했다.
이정애 기자, 정의길 선임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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