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8 17:01
수정 : 2019.07.1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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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 복장을 갖춘 하와이 경찰이 17일 하와이 원주민들이 성지로 여기는 마우나 케아 산 정상에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 ‘서티미터 텔레스코프’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며 도로를 점거하고 잇는 2000여명의 시위대 앞에 도열해 있다. 호놀룰루/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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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성지’ 마우나 케아산 정상에
130억년 이전 우주까지 관측 가능한
‘서티미터 텔레스코프’ 건설 재개되자
원주민 등 2000명 도로점거 항의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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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 복장을 갖춘 하와이 경찰이 17일 하와이 원주민들이 성지로 여기는 마우나 케아 산 정상에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 ‘서티미터 텔레스코프’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며 도로를 점거하고 잇는 2000여명의 시위대 앞에 도열해 있다. 호놀룰루/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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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지를 내줄 수는 없다!”
하와이에서 가장 높은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 건설이 시작되면서, 성지 및 자연환경 훼손을 우려하는 원주민과 환경보호단체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오랜 법정 투쟁 끝에 15일 마침내 공사가 재개됐으나, 도로를 봉쇄하고 항의 시위에 나선 원주민과 경찰이 충돌이 일어나며 17일 원주민 원로 33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하와이 뉴스 나우> 등이 보도했다.
마우나케아산을 둘러싼 논란은, 2009년 14억달러(약 1조6000억원)를 들여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인 서티미터 텔레스코프를 건설한다는 발표가 나온 뒤부터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해발 4214m에 이르는 마우나케아산 정상은 1년 내내 날씨가 좋은데다, 빛공해가 적어 천체 관측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18층 높이, 주경의 길이가 30m에 달하는 거대 천체망원경 건설을 통해 130억년 이전의 우주까지 관측해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이 산을 존경받는 원로들이 묻힌 성지로 여긴다는 점이다. 원주민들은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통로와 다름없는 이 산에 거대 천체망원경을 설치해 성지를 훼손시킬 수 없다며 공사 저지에 나섰다.
2014년 10월, 공사의 첫 삽을 떴지만 원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듬해 4월부터 공사가 중단됐고, 이후에도 공사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 이번에 공사가 재개된 것은 지난해 10월 하와이주 대법원이 건설 허가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지난달 20일 하와이 정부가 공사 재개를 공식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하와이주 정부는 지난 15일부터 마우나케아산 정상으로 이르는 모든 도로의 통행을 차단하고 서티미터 텔레스코프 건설을 위한 장비들을 운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몰려든 원주민과 환경단체 회원 등 2000명이 임시텐트를 치고 고속도로 교차로와 도로를 막아서고 공사 차량의 정상 진입을 막는 실력 행사에 들어가면서, 시위대와 경찰 간에 사흘 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져왔다.
원주민들은 문화·종교 활동을 위해 자신들의 차를 하루에 한 대씩만 정상에 오르게 해준다면 천문대 관계자들의 통행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당국에 제안하는 등 평화적 해결책 찾기에 나섰지만, 끝내 당국과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시위 사흘째인 17일 오전 경찰은 서로 팔을 걸고 인간띠를 만들어 저항하는 시위대 체포에 나섰다.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33명 중 대부분은 휠체어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령의 원주민 대표들이었다. 시위대는 “우리들의 쿠푸나(조상·원로를 부르는 호칭)까지 잡혀갔다”고 울부짖으며 “하와이 알로하”를 합창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시위 지도자 중 한 명인 카호오카히 카누하는 천체망원경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하와이 원주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싸우고 저항하며 버티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원주민의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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