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8 18:06
수정 : 2019.04.1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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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쿠바 피그스만 침공(1961년) 참전군인 모임에서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공표하고 있다. 마이애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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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여행·교역 제한 등 경화 공급 차단에 초점
볼턴 “독재 트로이카 붕괴중…러시아에도 경고”
쿠바 “완전 불법”…베네수엘라 “제국이 발악해”
EU “미국의 일방 조처…역외 적용땐 WTO 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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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쿠바 피그스만 침공(1961년) 참전군인 모임에서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공표하고 있다. 마이애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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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가 ‘좌파 정권 타도’를 본격 선언한 미국발 찬바람에 얼어붙고 있다. 미국은 눈엣가시로 여겨온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파 국가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나섰다. 이 국가들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등도 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면 대응하겠다고 반발하면서 국제 분쟁으로 불씨가 옮겨붙을 조짐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쿠바 피그스만 침공(1961년) 참전 군인 모임 연설에서 “독재의 트로이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이들 국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추가한다고 밝혔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피그스만 침공은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정부를 무너뜨리려고 쿠바 출신자들로 구성된 부대를 보냈다가 참패한 사건이다.
신규 제재는 경화(국제 지불 수단으로 쓰는 화폐) 공급 차단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은 쿠바에 가족을 둔 미국 시민의 송금 한도를 1분기에 최대 1000달러로 한정하고, 가족 방문이 아닌 쿠바 여행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 3개국 군부와 정보기관의 소유 자산을 제재하고, 쿠바 정부가 몰수한 기업과 거래하거나 그 자산을 이용하는 기업들도 국적을 불문하고 제재하기로 하는 등 광범위한 경제 봉쇄 조처가 포함됐다.
또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959년 혁명 이후 쿠바 정권에 몰수당한 미국인들의 재산을 회복하기 위한 소송에 대한 제한 조처를 5월부터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1996년 제정된 헬름스버튼법은 미국인들의 재산권 회복 절차를 담고 있는데, 유럽을 비롯한 외국 정부들은 뒤늦게 이런 소송이 제기되면 쿠바에서 사업하는 제3국 기업들이 분쟁 대상 자산을 취득했다는 이유 등으로 불의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미국의 역대 정부는 관련 조항들의 발효를 계속 미뤄왔다. 이런 조항들이 발효되면 60년 전 재산권 문제를 놓고 국제적 혼란이 불가피하고, 쿠바도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볼턴 보좌관은 연설에서 “비극적이게도, 오바마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쿠바 정권이 미주 지역 전체에 악성 영향력과 이념적 제국주의를 퍼뜨리는 데 필요한 정치적 보호막을 제공했다”며 “새 제재들은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외부 세력에게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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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쿠바 등 중남미 3국의 경제 숨통 죄기를 크게 강화한 17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 거리에서 한 여성이 엽서 판매대 옆을 지나가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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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정부는 제재 강화는 “국제법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번 제재는 완전히 불법이다”, “제국(미국)이 미쳐서 발악하는 것 같다”고 거칠게 반응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18일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를 불법으로 간주하며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러시아 국영 <리아>(RIA)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2002년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협약을 맺어,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석유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쿠바는 베네수앨라에 양질의 의료진와 교사 등 전문인력을 파견해왔다.
베네수엘라는 독립 이후 전통적인 친미 국가이자 미국의 핵심적인 석유 공급원었으나, 1999년 반미 사회주의를 천명한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2013년 차베스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해 올해 초 출범했으나,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자신이 진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면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즉각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면서,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의 고삐를 죄어 왔다.
미국의 이번 조처는 쿠바와 경제 관계를 갖고 있는 우방국들에서도 우려와 반발을 사고 있다. 유럽연합의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세실리아 말스트롬 통상담당 집행위원, 캐나다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외무장관은 18일 공동성명을 내어 “(미국이) 일방적인 쿠바 관련 조처들을 역외에 적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럽연합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쿠바와의 거래 제재가 현실화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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