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2 19:13
수정 : 2019.04.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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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12일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어산지를 석방하라’고 적은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어산지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이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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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선 경쟁자 클린턴 메일 공개 땐
“사랑해 위키리크스” 등 145번 언급하더니
어산지 체포되자 “내 알 바 아냐” 말 바꿔
‘러시아 게이트’ 재점화 우려 선긋기 분석
‘언론자유 침해 논란일까’ 혐의 한정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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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12일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어산지를 석방하라’고 적은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어산지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이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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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내 알 바 아니다.”
폭로 전문 누리집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11일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내놓은 첫 반응이다. 미국 언론들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위키리크스가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킹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문서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을 공개하자 “사랑해요, 위키리크스”, “위키리크스는 보물창고”라며 한껏 추어올리던 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배신’을 두고, 어산지가 미국에 인도되면 가까스로 불을 끈 ‘러시아 게이트’가 재점화할 것을 우려한 선긋기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게이트는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 쪽이 트럼프 후보 당선을 위해 힐러리 후보 쪽 자료들을 해킹하고 공개한 사건이다. 해킹 자료들은 2016년 7월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돼 힐러리에게 적잖은 타격을 줬다. 최근 활동을 끝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의 공모 혐의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특검은 위키리크스에 자료를 건넨 혐의로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들을 궐석 기소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집사 구실을 한 마이클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미리 알았다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 탓에 다 이긴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은 어산지의 송환을 계기로 이 문제를 다시 쟁점화할 태세다. 최대 피해자인 힐러리는 “어산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그가 우리 손안에 들어오면 사실과 진실을 캐낼 수 있다”고 반겼다.
180도 달라진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이런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0년만 해도 어산지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2016년 대선 막판에 위키리크스를 145번이나 언급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는 2017년 위키리크스가 중앙정보국(CIA)이 사용하는 해킹 툴을 공개한 직후 어산지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는 안을 추진했다. 현재 미국 법무부는 어산지에게 2010년 브래들리 매닝 일병(성전환 후 ‘첼시 매닝’으로 개명)의 미국 외교전문과 국방부 자료 해킹 사건 공범 혐의만 적용하고 있다.
이는 어산지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하면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조처로 해석된다. 컴퓨터 자료 절도만 문제삼으면 영국이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그의 신병을 인도할 수 있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사기밀 유출로 이미 7년형을 살고 나온 매닝이 어산지에 대한 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달 8일 2년 만에 재구속된데다, 뉴욕연방검찰 역시 중앙정보국 해킹 툴 유출사건 기소 준비를 마친 상태라 어산지에게 간첩 혐의 등이 추가될 수 있다. 그러면 2010년 및 2017년 해킹만 문제삼고 2016년 힐러리 쪽에 대한 해킹은 빼주기가 어렵게 된다. 2016년 해킹이 문제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러시아 게이트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한편 어산지의 변호인인 제니퍼 로빈슨은 “(어산지 체포는) 전 언론 조직과 기자들에게 위험한 선례가 됐다”며 “미국의 송환 요구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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