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주의 꺼낸 미국…베네수엘라발 ‘제2 쿠바 위기?’

임시대통령을 자임하는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의회 의장이 30일 중북부 도시 로스테케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지자들 손을 잡고 있다. 로스테케스/AP 연합뉴스

미 “베네수엘라 파견 러시아군 나가라”
러 “미국이 베네수엘라 위협 중단하라”
러시아군 100여명 파견 놓고 공방 격화
볼턴 “미주대륙에 외부 간섭 막는 먼로
독트린이란 말 쓰는 것 두렵지 않다”

임시대통령을 자임하는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의회 의장이 30일 중북부 도시 로스테케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지자들 손을 잡고 있다. 로스테케스/AP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에 파견한 러시아군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먼로주의까지 언급하며 경고를 날렸다. ‘제2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30일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위협하고,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질식시키며, 이 나라를 내전으로 몰고가는 공개적인 국제법 위반을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자카로바 대변인의 반응은 전날 볼턴 백악관 보좌관이 베네수엘라에서 발을 빼라고 경고한 것에 대한 응수다. 볼턴 보좌관은 “서반구의 외부 행위자들이 베네수엘라나 그 밖의 지역에서 작전을 하거나 작전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군사 자산을 보내는 것에 강하게 경고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그런 도발 행위를 이 지역의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계속해서 미국과 서반구의 우리 파트너들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걷어차는 모습의 그림을 넣은 현수막을 앞세운 ‘반제국주의 행진’ 참가자들이 30일 수도 카라카스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카라카스/AFP 연합뉴스

이런 경고는 러시아 육군참모총장을 필두로 23일 베네수엘라에 도착한 러시아군 100여명에게 떠나라고 통첩한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려고 여러 시도를 하는 와중에 병력을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7일 자국이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의회 의장의 부인 파비아나 로살레스를 백악관에서 만나며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29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로살레스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양국 국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트럼프 부부의 행동은 로살레스를 베네수엘라의 퍼스트 레이디로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가 29일, 임시대통령을 자임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의회 의장의 아내 파비아나 로살레스와 함께 양국 국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멜라니아 트럼프 트위터 갈무리

하지만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끼어들면서 “모든 옵션”을 고려한다는 미국은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러시아 군수업체 로소보로넥스포르트는 베네수엘라에 헬기 조종사 훈련센터를 29일 개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사가 전투기, 탱크, 장갑차, 대포, 방공 시스템, 소총을 공급해 “베네수엘라가 매우 짧은 시간에 확실한 방어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국 국무부 베네수엘라 특사는 이번에 파견된 러시아 전문가들은 러시아제 S-300 지대공 미사일을 수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러의 대립은 소련 핵미사일 배치를 두고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형성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도 떠올리게 한다. 미국과 가까운 쿠바를 두고 핵무기 사용까지 거론된 당시에 비하면 지금의 위기 수준은 높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를 뒷마당으로 여기는 미국으로서는 베네수엘라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리려다 러시아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의 발언은 이런 위기 의식의 표현이다. 그는 “베네수엘라에 쿠바와 러시아 군대가 있다면 베네수엘라인들은 외세가 아니가 자신들의 정부를 언제 선택할 수 있나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라틴아메리카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반미 정권 연대’가 강화되는 것을 견제하는 발언이다.

볼턴 보좌관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먼로주의라는 개념까지 꺼냈다. 그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우리 행정부는 먼로 독트린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먼로 독트린의 목적들 중 하나는 재식민화 등 외부의 간섭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823년 제5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천명한 먼로주의는 ‘유럽과 아메리카는 서로 간섭하지 말자’로 요약된다. 애초 아메리카대륙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유럽의 왕정 복고 등 반동적 흐름이 상륙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가 있었지만, 아메리카는 미국의 영역권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번 발언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본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