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4 16:43
수정 : 2019.03.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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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희대의 입시 비리를 저지른 윌리엄 싱어 ‘에지 칼리지 & 커리어 네트워크’ 대표가 12일 보스턴 연방법원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스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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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들 희대의 입시 비리의 다양한 ‘뒷얘기’ 소개
수구부 없는 학교에 수구 특기생, 어느날 갑자기 육상 유망주
예일대 축구 감독은 학부모 ‘직거래’ 시도하다 덜미 잡히기도
SAT 1200점대에 “조지타운대 가고 싶다” 말하다 결국 포기
일그러진 부모들이 원한 것은 “자녀의 보장된 입학”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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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희대의 입시 비리를 저지른 윌리엄 싱어 ‘에지 칼리지 & 커리어 네트워크’ 대표가 12일 보스턴 연방법원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스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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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엔 수구부가 없는데 어떻게 한 학생만 수구 특기생으로 뽑을 수 있나요?”
2017년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명문 사립학교 버클리스쿨의 한 진학 상담사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 입학 담당 부서에 질의를 넣었다. 이 학교 학생 마테오 슬론이 수구 종목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사실 이 학교에는 수구부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입시 부정 때문이었다. 학생의 아버지이자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아쿠아텍처의 대표이사 데번 슬론은 바로 그런 ‘불가능한 일’을 위해 캘리포니아주의 입시 컨설턴트 ‘에지 칼리지 & 커리어 네트워크’의 윌리엄 싱어 대표에게 거액을 줬다.
‘수상한’ 질의가 접수되자 서던캘리포니아대는 진상조사에 나섰다. 싱어와 입시 부정을 공모한 도나 헤일 서던캘리포니아대 선임 부체육국장이 지난해 4월11일 입학 담당 부서에 해명 메일을 보내 사태 무마에 나서야 했다. “슬론은 로스앤젤레스 수구 클럽에서 수년간 활동했고, 여름에는 청소년팀에서 이탈리아로 전지훈련도 떠났다.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우리는) 인지하지 못했다.” 이 해명이 어색하게 느껴졌는지 헤일은 “그는 키가 작지만 몸통이 길고, 짧고 강한 다리를 지녔다. 수영이 빨라 공을 잘 따낼 수 있다”는 설명을 추가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3일 “호기심 많은 한 사람의 조언으로 지난해 7월 입시 비리 사건이 거의 발각될 뻔했다”고 전했다.
미국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이 전날 공개한 명문대 입시 비리 사건은 미국 사회 전체를 패닉에 빠뜨린 희대의 범죄다. 그 충격 탓에 미국 언론들 다양한 뒷얘기를 쏟아내며 보도를 이어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수사는 증권 사기와 관련해 수사를 받던 한 금융기업 임원의 제보로부터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는 수사당국에 선처를 호소하며 “흥미를 가질 만한 제보를 하겠다”며, 최고 명문대인 예일대 여자 축구팀 감독 뤼디 메러디스가 ‘딸을 입학시켜줄 테니 돈을 달라’고 제안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이후 제보자는 지난해 4월 수사당국이 제공한 녹음장치를 장착하고 보스턴의 한 호텔방에서 메러디스를 만났다. 메러디스는 그에게 딸을 입학시켜주는 대가로 45만달러(약 5억1천만원)를 요구했다. 메러디스는 앞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한 학생을 입학시킨 대가로 싱어한테 40만달러를 받았었다. 그는 싱어를 끼지 않고 학부모와 직접 거래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은 이후 주범인 싱어의 꼬리를 잡았다. 그들은 지난해 6월부터 싱어의 전화를 도청해 입시 부정을 의뢰한 학부모 16명과 나눈 대화 내용을 확보했다.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주인공 펠리시티 허프먼은 큰딸의 입시 점수를 높이려고 싱어에게 1만5000달러를 지불했다. 이어 둘째 딸을 위해서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려다 포기했다. 작은 딸의 모의고사 점수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허프먼의 남편은 지난해 12월 싱어와의 통화에서 둘째 딸이 “조지타운대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싱어는 올 2월 통화에서 “조지타운대에 가려면 에스에이티(SAT) 점수가 1400점은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는 가정교사와 함께 치른 모의고사에서 1200점대를 받는 데 그친다. 갑자기 점수가 오르면 가정교사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한 허프먼은 두번째 부정을 포기했다. 일부 학부모는 명문대 출신이 대리 시험을 보는 데 쓰게 하려고 자녀의 필체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밖에 학부모들은 명문대 진학을 위해 자녀를 유능한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둔갑시키거나, 포토샵으로 사진을 조작해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인 것처럼 꾸미는 엽기적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 한 학부모는 지난해 여름 조작 사진을 붙인 입학 서류를 싱어에게 보내면서 “아들은 정말 강한 다리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요새 세상 돌아가는 방식은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묘한 말을 덧붙였다.
싱어는 “학부모들이 원한 것은 (자녀가 반드시 입학할 수 있다는) 보장이었다. 그들은 이 일이 (반드시) 이뤄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자녀의 명문대 진학 앞에 윤리·정의·공정 등의 가치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모든 곳이 ‘스카이 캐슬’이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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