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1 16:01
수정 : 2019.02.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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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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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레이건-소 고르바초프, 극한 대치 뒤 협상 테이블에
1985~87년 3차례 회담으로 핵군축·냉전 해체 조약 결실
북-미 정상회담 개시 배경·진행 겉모습 과거와 닮은꼴
단계적·장기적 해법 추구와 트럼프 정치 일정도 맞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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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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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추가 정상회담을 예고하면서 그가 단계적·장기적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더 분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서두를 것 없다”고 했다. 3차 정상회담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 일정을 그리는지가 관심거리인데, 첫 회담으로부터 2년여 만에 큰 결실을 맺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협상이 오버랩된다.
1981년 집권한 레이건은 핵군축에 반대하면서 군비 경쟁 등에서 소련을 압도하는 길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집권 초기에도 우주에서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일명 스타워즈 계획)을 통해 핵무기 경쟁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상호 대량 파괴의 위협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 국내적 위기 의식과 유럽 동맹의 반발을 불렀다.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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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의 샤또(성)에서 처음 만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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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은 지도자들의 개인적 관계가 긴장 해소의 첫발이라고 여겨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난다. 6년 만의 미-소 정상회담은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기자회견에서 “회담은 솔직하고 날카로웠으며, 때로는 매우 날카로웠다”고 했다. 레이건은 “어느 쪽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만난 것 자체가 성과였다. 레이건은 통역만 대동한 회담에서 “미·소는 3차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단 두개의 국가이며, 동시에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단 두개의 국가”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핵군축 논의를 개시하기로 했고, 이듬해 고르바초프가 워싱턴을, 그 다음해에는 레이건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로 했다.
두번째 정상회담은 1986년 10월 워싱턴이 아니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렸다. 이때도 괄목할 발표는 없었다. 하지만 두 정상은 첫 회담 뒤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논의를 진척시키고 신뢰를 키웠다. 2000년까지 모든 핵무기를 없애자는 구상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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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서명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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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워싱턴 3차 정상회담에서는 소련이 미국의 전략방위구상 문제에 관해 양보하면서 돌파구가 열림에 따라 ‘냉전을 끝낸 조약’이 마침내 탄생했다. 서유럽과 소련 서부를 노리는 사거리 500~5500㎞의 지상 발사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서명한 것이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이듬해에는 모스크바에서 만나 핵탄두와 운반체의 대규모 감축을 추진하자고 약속하면서 추가 핵군축의 길을 열었다.
북-미 정상의 움직임도 △위협을 한껏 끌어올렸던 지도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고 △톱다운(위로부터 아래로) 방식이 강조되며 △2차까지 회담을 제3국에서 개최한 점이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3차 정상회담을 시사한 것을 보면, 과거 미-소 정상들처럼 상대국 교차 방문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지난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대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내가 적절한 시기에 평양을 방문할 수 있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다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말했다”고 했다.
2020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로드맵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보탠다. 그의 입지는 레이건-고르바초프처럼 2년여에 걸쳐 ‘1차 회담에서 안면 트기’→‘서신 교환 등으로 논의와 신뢰를 숙성시킨 뒤 2차 회담에서 전환점 마련’→‘3차 회담에서 큰 성과 도출’의 길을 밟는 유인이 될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는 게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려면 고르바초프가 레이건과의 2차 회담을 정의한 것처럼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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