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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1 17:54 수정 : 2006.05.22 14:54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룡농 수족관이 가장 먼저 반긴다. 도룡농 두 마리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인사를 한다. 재진(고양 용정초교 5년)이가 “애들은 지렁이 먹고 살아요”하며 옆 지렁이 통에서 한 마리를 꺼낸다. 집게로 잡아서 도룡농 앞으로 내밀자 순식간에 혀를 내밀어 삼킨다. 먹이 먹는 폼이 개구리랑 똑같다.

재진이 엄마(정미라·41)가 작은 방에 들어가더니 통을 들고 나온다. “이건 왕사슴벌레예요. 원래는 참나무 진을 먹는데 구하기 힘들어서 젤리를 먹여요.” 정씨는 통안을 들여다보며 썩은 참나무를 한 켜씩 벗겨 보인다. 연한 녹색 알이 보인다. 이번에는 톱밥을 헤집더니 애벌레를 찾아낸다. 물론 왕사슴벌레 애벌레다. “안 징그러워요?” “징그럽긴요. 얼마나 귀여운데…”

정씨가 다시 방에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애사슴벌레 통을 가지고 나온다. 둘째 세진(용정초교 3년)이가 가이드로 나선다. “여기 뿔처럼 생긴 게 있죠. 사실은 턱이예요. 먹을 때 보면 턱이란 걸 알아요.” 곤충 소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씨는 넙적사슴벌레, 강사슴벌레, 톱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통을 계속해서 들고 나온다. 투명 딸기팩에 담긴 누에고치도 등장한다. 휴지심으로 만든 집에서 누에들이 지어 놓은 고치들이 복스럽다. 그러고 보니 곤충 농장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정씨는 “지난 겨울에 많이 처분해서 이것밖에 안남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재진이가 손을 잡고 베란다로 이끈다. 상당히 큰 항아리에 물이 가득차 있고 개구리밥이 둥둥 떠있다. 뜰채로 개구리밥을 걷어내니, 알에서 깨어난 도룡농 새끼들이 득시글댄다. “재진아 애들이 다 커서 나오면 어떡하니?” “좀 있다 밖에 다 풀어줄 거예요.” 대답이 너무 단순하다.

‘곤충 가족’ 재진이네가 곤충들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주말에 아이들이랑 야외에 놀러갔다가 곤충동호회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로부터 장수풍뎅이 암, 수 두 마리를 분양받았다. 처음에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정씨만 장수풍뎅이에 푹 빠져 살았다. “젤리를 빨아먹고 흙을 파고 들어가고 참나무에 구멍을 내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먹는 것도 잊고 구경했죠.”

장수풍뎅이가 알을 낳자, 정씨는 다른 곤충도 키워보기로 했다. 사슴벌레를 분양받았다. 그리고 집 주변에서 보이는 곤충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늘소, 매미, 실잠자리, 호랑나비, 무당벌레, 꽃무지 등이 정씨 집에 입주했다. 한번은 한겨울에 새끼 메뚜기들이 온 집안을 뛰어다녀 가족들을 질겁시켰다. 전년 가을에 구해온 메뚜기알을 작은 방 한 귀퉁이 통에 넣어두었더니 이놈들이 방안의 따듯한 온기에 철을 잊고 부화한 것이었다. 정씨는 바닷가에 놀러갔다가도 꽃게와 망둥어, 말미잘, 따개비를 잡아와 키웠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던 아이들도 이런 저런 곤충들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서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학교 갔다오기가 무섭게 곤충 통들 앞에 앉아 놀았다. 흙을 파헤치고, 곤충들을 뒤집고, 싸움 붙이고, 먹이 주고 하면서 새로운 곤충의 세계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씨는 곤충책들을 한 권씩 사주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키워갔다. 지금도 책장 하나는 <사마귀 관찰> <호랑나비> <파브르 곤충기> 시리즈, <한국의 딱정벌레> <갯벌탐사도감> 등 곤충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당신은 나보다 곤충을 더 좋아해”하며 곱지 않던 눈길을 보내던 남편도 어느 순간 곤충 애호가로 변신해 있었다. 정씨는 “피곤에 쩔어 집에 와서도 몇십분씩 서서 곤충들에게 먹이를 주는 저를 보고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먼저 챙기니 천지개벽이 따로 없죠.”며 허허 웃었다.

‘곤충 가족’이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 주민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알이나 애벌레들을 분양받아 가는가 하면, 어디에 무슨 곤충이 산다는 제보도 수시로 해왔다. 한번은 한 집에서 방충망에 사마귀가 걸렸다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온 가족이 가서 보니 암사마귀였다. 마침 집에서 키우던 사마귀가 수컷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집에 데려와 같이 키웠다. 그러던 중 온 가족이 휴가를 가느라 옆집에 잠시 맡겼는데, 이튿날 문자메시지가 왔다. 교미를 하고나서 암놈이 수놈을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온 가족이 너무 중요한 장면을 놓쳤다며 땅을 치곤 후회했다. 하지만 알 낳는 장면을 기필코 보리라는 생각에 매일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방아깨비, 메뚜기, 메미들을 잡아들였다. 사마귀는 산 먹이밖에 먹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뒤 사마귀는 무려 3시간 동안 재진이네 가족에게 알낳는 장면을 생중계했다.

재진이네 가족은 단지 곤충을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가 ‘곤충 박사’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벌레의 생태에 대해 정통하다. 왕사슴벌레는 등에 줄무늬가 있는 게 암컷이고, 장수풍뎅이는 뿔리 있는 게 수컷이라고 재진이가 설명하면, 세진이도 “장수풍뎅이는 똥구멍이 가로로 돼있고 사슴버레는 세로로 갈라져 있다”고 말한다. 장수풍뎅이는 세로로 집을 짓고 사슴벌레는 가로로 집을 짓는다는 말도 덧붙인다. 번데기방을 지을 때 입에서 액체를 뿜어서 무너지지 않게 한다는 사실도 이들 형제가 발견한 사실. 뿐만 아니다. 매미는 모두 ‘맴맴’하고 우는 것 같지만 소리가 다 다르단다. 애매매는 ‘맴맴’ 말매미는 ‘매앰매앰’ 참매미는 ‘끽끽’ 운다고 한다. 누에 고치를 사람이 뚫어주면 나방이 살아나오지 못하고 넙적사슴벌레는 거꾸로 뒤집혀 있으면 죽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정씨는 “곤충 관련 책들을 여러 권 뒤져봤지만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속시원히 설명해주는 게 없었다”며 “아마도 우리 가족이 알고 있는 곤충 정보가 웬만한 곤충책보다 더 많고 정확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이렇듯 곤충을 키우면서 새로 발견한 사실들은 일지 형식으로 꼼꼼하게 기록돼 따로 보관돼 있다. 또한 알->애벌레->번데기->나방 등의 변태 과정을 하루 단위로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두기도 했다.

그런데 ‘곤충 가족’ 재진이네는 언제까지 곤충과 공생할까? “의외로 키우는 재미 말고 배우는 게 많아요. 생존 본능, 종족 보존 본능, 독특한 습성을 알게 되고, 풀리지 않는 생물의 신비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돼요. 언제까지나 키우고 싶어요.” 이구동성 대답이다.

왕초보 '곤충기르기'

곤충을 키우고 싶다면 가장 먼저 준비할 일은 도구 마련. 사육통, 애벌레통, 놀이목(참나무), 톱밥, 젤리, 부삽 등을 할인점이나 수족관, 곤충숍에서 산다. 곤충은 주변에서 키우는 사람한테 분양받거나 직접 아이들과 들과 산으로 나가 잡아오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 카페나 전문 곤충숍에서 구매한다. 벅스홈(bugshome.co.kr), 곤충경매(auctioninsect.com), 곤충 파라다이스(cafe.daum.net/insects7) 등이 대표적이다.

곤충 키우는 방법은 이미 곤충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한테 전수받는 게 최선이다. 곤충 동호회도 괜찮다. 시중에 나와있는 곤충책들 가운데 친절하고 상세하게 곤충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쉽게도 거의 없다.

곤충을 키우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요한다. 보통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 되는 과정이 1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끈기와 애정을 가지고 보호해주고 관찰하는 게 좋다. 아이들은 곤충을 키우면서 관찰력을 기르고 탐구정신을 기를 수 있다. 또 이 때 다져진 성실성은 다른 일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정미라씨는 귀뜸했다. 박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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