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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1 17:53 수정 : 2006.05.22 14:57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는 1999년 여름, 타이페이에서 열렸던 아시아 아동문학 대회를 잊지 못한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대회 중심 주제는 아시아 아동문학의 ‘회고와 전망’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아시아 역사가 어떠했는가?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졌고, 그 중심에 일본이 있었다. 각국 대표들은 연일 제국주의 침략을 성토하였고, 일본 대표들은 어느 때보다 위축된 분위기였다.

마지막 날, 총련계 재일동포 작가가 일본 대표로서 발제를 하였다. 한국어가 서툴러 부득이 일본말을 쓴다며, 그녀는 한국 작가들에게 몹시 미안해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인데, 그녀는 자신에게 미안한 것 같았다.

그녀는 조선인들이 어떤 차별을 극복해야 했는지 구체적이고 절실히 증언하는 가운데, 한 가지 실화를 예로 들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 아이들도, 자신이 ‘조센징’임이 밝혀질까 봐 늘 불안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친구들과 가다가 길에서 할머니를 만난 거다. ‘조선할매’ 임을 한눈에 말해주는 촌스러운 용모와 옷차림. 아이는 창피했다. 그래서 반갑게 다가오는 할머니를 낯선 사람인양 힘껏 밀쳐버렸고, 길 한복판에 쓰러진 할머니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했다.

아아, 나는 그 할머니가, 도무지 남 같지가 않았다. 무식하고 촌스럽던, 온몸으로 ‘조선할매’ 임을 보여주던, 내 할머니로 느껴졌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해자는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것을 잊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이리저리 찢어져 고통을 겪고 있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오래 그칠 수 없었다.

발표가 끝나자, 한 대만 작가가 전쟁 피해자를 위로하는 노래를 우렁차게 불렀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누군가는 자유와 평화를 위한 묵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해프닝의 과정에서 나누었던 눈빛들, 마음의 뜨거움과 함께, 대회를 마치고 떠날 때 일본 대표단 단장 시카다 신 선생이 가만히 청하던 악수도 마음에 오래 남는다.

오래 전 이야기를 새삼 꺼낸 까닭은, 대추리 때문이다. 어린이날 전날 있었던 유혈사태를 보며, 힘없는 우리끼리 욕하고 싸우고 피 흘리는 것을 보며, 며칠 내내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난다.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함부로 싸움터로 내몬 역사는 이미 충분했다. 좀 느리더라도, 이제 내 식구 다독여가며 갈 때도 되지 않았는가?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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