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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1 17:31 수정 : 2006.05.22 15:02

논리로 배우는 수학

4월 임시국회는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둘러싼 정당들 사이의 갈등으로 주요 민생법안 처리가 무산될 뻔하였다. 개방형 이사제 조항으로 불리는 개정사학법 14조 3항은 “학교법인은 이사 정수의 4분의 1이상은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에서 2배수 추천한 인사 중 선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개정을 원하는 쪽은 이 조항 중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에서’라는 문구를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 등에서’로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또는’이라는 글자와 ‘등’이라는 글자이다. 본래 ‘또는’이라는 등위(等位)접속사는 일상적인 의미나 수학적인 의미 모두 그 접속사 양쪽에 있는 것 중의 최소한 어느 하나를 가리킨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초·중·고등학교에 설치되어 있고 대학평의원회는 대학에 설치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 어느 한 쪽을 나타낼 수밖에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가 같은 학교 내에 있더라도 그 중 어느 하나에서 추천하거나 둘 다에서 추천해도 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등’이라는 말은 그 뒤에 여러 가지가 생략된 것으로 ‘등’을 통해 개방형 이사 추천권을 다른 임의기구에 줄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 이른바 재단의 뜻을 대변하는 ‘들러리’ 기구들이 추천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커서 학교 현장은 추천권을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변모한다는 것이 재개정 반대의 입장이다.

수학 교과에서도 이와 같은 사항이 그대로 가르쳐지고 있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 학생들이 종종 실수와 착각을 하는 것을 본다.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처음 배우는 수학 단원이 집합이다. 집합의 연산 중에 합집합과 교집합이라는 것이 있다. 두 연산에 대한 교과서의 정의는 각각 다음과 같다.

그리고 오른쪽 그림과 같은 벤 다이어그램으로 그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는’이라는 말은 어느 한 쪽이나 두 군데 모두 속해도 된다는 뜻이며, ‘그리고’라는 말은 두 군데 모두 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각 대학마다 입시 제도가 너무나 다양하고 자주 변하여 입시 요강을 그때그때 읽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입시 요강에도 ‘그리고’와 ‘또는’이 사용되고 있고, 이것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의 지원 자격이 <수리영역 4등급 이내 ‘또는’ 외국어영역 3등급 이내>라고 했다면, 수리영역이 4등급이고 외국어 영역이 9등급인 학생도 지원 가능하며 수리영역이 4등급이고 외국어영역이 3등급인 학생도 지원가능하다. 반면 지원 자격에서 ‘또는’이 ‘그리고’로 바뀌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때는 수리영역이 1등급이더라도 외국어영역이 4등급인 학생은 지원 자격이 없으며, 반대로 외국어영역이 1등급이더라도 수리영역이 5등급인 학생은 지원할 수가 없다. 오로지 수리영역이 4등급 이내이면서 외국어영역이 3등급 이내인 학생만 지원 가능하다.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나라 중학생들이 헷갈리는 것으로는 부등식이 있다. 흔히 이상(以上)이나 이하(以下)를 식으로 나타낼 때는 등호를 포함하는 부등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3 이상의 정수라는 것은 3을 포함하여 3보다 큰 정수를 의미하며 기호로는 ‘( )인 정수’로 나타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등호를 포함하는 부등호 ‘( )’를 사용한다.

다음은 중학교 1학년 <7-가> 교과서에 나온 문제이다.

x의 값이 1, 2, 3, 4일 때, 부등식 ( )의 해를 구하여라.

<풀이>

풀이는 오른쪽과 같다. 이렇게 식에 있는 문자에 어떤 값을 대입할 때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계산을 잘 한다. 그런데 풀이 과정을 자세히 보면 ( )과 ( )에서 약간 이상한 뉘앙스를 느낀다. 학생들은 둘 다 참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학생이 많다. ( )은 참이더라도 ( )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다수 있다. 설사 둘 다 참이라고는 생각하더라도 그 둘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등호 ‘( )’이 ( )또는 ( )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이 순간 ‘또는’에 대한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학생들은 문자를 사용하여 쓴 식에서는 제대로 생각하는 듯하다가, 오히려 문자를 없애고 수만 사용한 식에서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식 ( )에서 ( )일 때 이 식은 참이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 )이라는 식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우선 거짓이라는 답이 가능하다. 그 이유인 즉은 5는 3보다 클 뿐 3과 같지는 않다고 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또는’의 뜻을 잘못 이해한 탓으로 틀린 생각이다. 또 하나 엄청난 답은 ( )이라는 식은 명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은 ( )일 때는 참이지만 ( )일 때는 거짓이므로 참과 거짓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명제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이 대답도 역시 ‘또는’의 뜻을 잘못 이해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 )은 참인 명제이다.

개정 사학법에 대한 재개정 논의에서 뜨거운 불씨가 된 ‘등(等)’이라는 문구는 ‘또는’이라는 문구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가지는 수학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다. 만일 ‘등’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면 앞으로 이사 추천권은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가 아닌 다른 기구에서 추천해도 법적으로는 참이 되므로 아무 문제없이 사학들은 개정 전과 별다를 바가 없이 이사들을 구성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학법을 개정한 뜻이 사라진다.

최수일/서울 용산고 교사 choisil@mathlo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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