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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7 19:40 수정 : 2006.05.09 13:37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별일이다. 교탁 바로 아래 있는 아이가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여학생도 아니요, 남학생이 왜 남자 선생을 똑바로 쳐다보는 거지? 오히려 몰래 딴 짓 하느라 선생 시선을 피해야 정상 아닌가? 슬쩍 쳐다보니 ‘씨익’ 웃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이상해. “왜애?” “선생님 와이셔츠 새 거네요”

여학교에 있었을 때는 본의 아니게 용모에 신경 좀 썼다. 아니, 쓸 수밖에 없었다. 워낙 쏘아 보는 시선들이 날카롭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했으니. ‘선생님, 오늘 새 양말 신으셨네요.’는 놀랄 일도 아니다. ‘선생님, 머리 미장원에서 자르셨죠?’, ‘입고 계신 빨간 티, 12반의 XX가 사 준 거라면서요?’ 어쩌다 유난히 쳐다보는 것 같다 싶을 때는 혹시, 방울(?)이 튄 건 아닐까 허리춤 밑을 슬쩍 내려다 봐야 할 정도다. 그런데 남학교로 온 후엔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건 셔츠를 사흘 내리 입어도 알아차리기를 하나, 베개를 잘못 베 뒤통수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삐죽 치켜 올라가도 놀리길 하나. 그야말로 바지 앞섶이 열린 채 교실을 활보해도 누구 하나 쳐다보고 알려주기라도 해야 지퍼를 올릴 것 아닌가. 오죽하면 어느 선생님 왈, “수업하기엔 쥐 죽은 듯 조는 반보다는 그래도 약간 소란한 반이 더 나아. 왜 그런 줄 알어? 방귀 뀌어도 되거든” 할 정도겠는가. 하여간 그 정도로 우리 아이들 눈, 코, 귀 다 막고 산다. 입만 빼고.

하긴 관심이란 건 삶의 여유 속에서 샘솟게 마련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겐 도대체 여유란 게 없잖은가. 항상 바쁘고 또 바쁘니까. 놀기 바쁘고, 자기 바쁘고, 먹기 바쁘고. 이렇게 바쁜 30~ 40명과 늘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선생도 덩달아 바쁠 수밖에 없다. 아니, 바쁘다 못해 정신이 다 없다. 침방울 ‘탁탁’ 튀겨가며 한창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거기 배운 덴대요” “뭐?” 그러자 다른 학생이, “아냐, 안 배웠어.”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이, “그냥 하세요. 쟤네들 배우나 안 배우나 똑 같애요” 이래 놓으니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이 말이다. 특히, 전 시간이 체육인 반에 들어가면 후텁지근한 사내들 냄새에, 땀 냄새, 발 냄새까지 마구 뒤섞여 골치가 다 찌끈찌끈할 정도니 정신이고 뭐고가 있을 턱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생이나, 애들이나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건 ‘말도 안 돼!’다.

그런데 이런 우리 아이들이, 게다가 낼모레면 대입 수능 시험 보는 고 3 아이가, 와이셔츠 새 거라는 것까지 알다니 이 아니 놀랄 일인가. 점점 여성이 남성화되어 가고 남성이 여성화되어 가는 것이 요즘 추세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우리 애들이 이렇게까지 섬세해지다니. 그러나 한편으론 나에 대해 관심있다는 얘기니 기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잖아도 새 와이셔츠라 목 부위가 뻣뻣했는데 목에 힘이 더 들어간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날 때까지 수업은 자연스레 열강. 흡족한 기분으로 교실을 마악 나서려는 순간이다.

“선생니임” “왜애?” “목에 껴 있는 것 빼세요” “?” 와이셔츠 목 부분에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이 그대로 껴 있었던 거다!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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