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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7 19:36 수정 : 2006.05.09 13:36

학번, 수험번호, 주민등록번호…. 우리의 삶은 숫자로 둘러싸여 있다. 수능 시험 예비소집일에 수험생들이 자신의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삶, 사유, 논술

“너는 누구니? 몇 학년 몇 반?” 학교에서 자주 접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학번만큼 ‘나’를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도 별로 없다. 학교의 학번은 마치 호처럼 빈번하게 이름 앞에 놓이는데도, 내가 만들 수는 없고 해마다 바뀐다. 재학증명서, 학생증, 시험답안…. 모두 학번이 없다면 공신력을 잃는다. 교과서에도 노트에도 학번을 적어야 안심이다. 숫자에 불과한 학번이 우리의 이름을 간단히 압도한다.

숫자의 힘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국가는 나를 주민등록번호로 인식하고, 은행은 계좌번호로 확인한다. 대학입시에서는 수험번호를 부여하고, 친구와 사귈 땐 전화번호를 주고받는다. 나의 학습 능력은 내신 등급으로 표현되고, 인생의 성공 여부는 아파트 평수로 압축된다.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숫자는 ‘나’를 겹겹이 둘러싼다.

숫자로 표현된 모든 사물은 제각각 품고 있는 고유성을 탈색시킨다. 강아지 세 마리, 책 세 권, 학생 세 명은 모두 ‘3’으로 통일된다. 숫자 ‘3’은 동물-무생물-인간의 차이를 간단히 지워버린다. 그래서 사실 ‘10903’ 같은 학번에 큰 의미는 없다. 집단의 구성원을 분류하고 편하게 인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슈퍼마켓의 수많은 상품들도 마찬가지다. 과일이건 과자건 바코드 리더기를 통과하면 일련번호와 가격으로 대체된다. 모두 다 숫자일 뿐이다.

이처럼 숫자는 사물의 개성을 지우고 보편적 속성으로 전환시킨다. 이 점에 주목했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수학을 통해 우주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 그 중에서 피타고라스는 단연 돋보인다. 직각 삼각형의 정리로 유명한 이 학자의 노력도 알고 보면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숫자의 관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악기의 소리와 현의 길이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음을 알아내었고, 심지어는 인간의 감정이나 영혼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도하게 주장하긴 했지만, 그에 의해 숫자는 현상의 이면을 관통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로 격상되었다.

숫자는 인간이 만든 관념이지만, 때로는 독자적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을 재창조한다. 이어령 교수는 <디지로그>에서 오행(五行)을 중히 여겼던 선조들의 우주론적 사고가 현실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색동옷과 신선로, 비빔밥과 김밥에 이르기까지 5색의 조화는 바로 ‘5’로 상징되는 오행설을 의미한다. 잘만 활용하면 문화의 독창적 결을 다듬는 핵심 요소도 될 수 있다. 또한, 숫자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경우도 많다. 4·19세대, 5·18정신, 386세대에서처럼 숫자는 시대를 대변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울림을 증폭시킨다. 어찌 보면 숫자에 대한 인간의 신뢰는 그 뿌리가 매우 깊은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될수록 비정함을 느낀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소설 <어린 왕자>에는, 아들이 새로 사귄 친구가 어떤 성격과 취미를 가졌는지 묻지 않고 그 아버지의 수입이 얼마인지를 궁금해 하는 어른 이야기가 나온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일생동안 별을 세고 있는 실업가도 숫자에 대한 집착을 풍자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아예 인간과 동급이 된 숫자를 등장시킨다. 컴퓨터 화면에 가득한 복잡한 숫자들이 결국은 인간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섬뜩한 상징성에 놀라게 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정작 매트릭스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인간 밧데리’일 뿐이다. 숫자가 활동을 하고 인간의 현실감은 위축된다. 차가운 숫자로 뒤덮인 계산 공간은 진짜와 가짜를 뒤집어 우리의 충격을 극대화시킨다.

‘광야’의 시인 이육사는 조선 독립의 염원을 담아 일제 감옥에서 받은 수감번호(264)를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반면 우리 학생들은 10402나 10531 같은 숫자로만 인식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둘의 차이는 바로 ‘주체적 의미 찾기’에서 나온다. 투명한 양파껍질처럼 우리를 둘러싼 숫자들에는 개성도 없고 온기도 없다.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에는 인간적 고민과 체온이 생략된다. 오직 하나의 가치 기준에 의해 정신은 균질화되고 비교 평가의 수단이 되어 간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는 ‘나 다움’을 열망하는 부글거림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자아정체성의 핵심이다. 정체성은 내 속에 있는 개성과 특징을 잘 이해하고 발휘할 때 형성된다. 그래서 나만의 고유성을 타인으로부터 확인받을 때 존재감은 그만큼 높아진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불러줄 때, 학생들은 특별한 친밀감을 느낀다. 자신이 무표정한 사물들과 구별되어 독립적 인격으로 대접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편리할 때 쓰고 잊으면 그만이지 학번이 그리 중요할까. 사실 문제는 학번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다. 나를 바라보는 가치관은 세상을 인식하는 창이 되는 법.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의식의 체에 걸러 되짚어 보자. 내 안의 갈등을 직시할 때 세상의 무늬도 한층 새로워 질 것이다.

<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옛 사람들은 ‘근정전(勤政殿)’, ‘심우장(尋牛莊)’처럼 집과 건물에도 저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102동 1308호’와의 차이를 생각해 보고 그 느낌을 이야기해 보자.

2. ‘100점짜리 인간’과 ‘1004같은 사람’은 그 표현과 의미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3. 우리 선조들은 이름 외에도 ‘자’나 ‘호’를 가졌다. 우리도 각자 의미를 담아 자신의 호를 짓고 느낌을 이야기해 보자.

4. 학교에서 학생들은 이름 불러주기를 바라면서도, 이름표를 곧잘 가린다. 그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5. 다른 사람이 ‘나의 이름’을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일까? 이름과 ‘진짜 나’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주제를 다각도로 살펴 보려면?

*‘만약에’와 ‘다른 방식은 어떨까’를 사용해 보세요. ‘만약에’는 가상적 상황을, ‘다른 방식은 어떨까’는 또 다른 현실을 찾아보게 합니다. 권희정/서울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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