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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 수험번호, 주민등록번호…. 우리의 삶은 숫자로 둘러싸여 있다. 수능 시험 예비소집일에 수험생들이 자신의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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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될수록 비정함을 느낀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소설 <어린 왕자>에는, 아들이 새로 사귄 친구가 어떤 성격과 취미를 가졌는지 묻지 않고 그 아버지의 수입이 얼마인지를 궁금해 하는 어른 이야기가 나온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일생동안 별을 세고 있는 실업가도 숫자에 대한 집착을 풍자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아예 인간과 동급이 된 숫자를 등장시킨다. 컴퓨터 화면에 가득한 복잡한 숫자들이 결국은 인간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섬뜩한 상징성에 놀라게 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정작 매트릭스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인간 밧데리’일 뿐이다. 숫자가 활동을 하고 인간의 현실감은 위축된다. 차가운 숫자로 뒤덮인 계산 공간은 진짜와 가짜를 뒤집어 우리의 충격을 극대화시킨다. ‘광야’의 시인 이육사는 조선 독립의 염원을 담아 일제 감옥에서 받은 수감번호(264)를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반면 우리 학생들은 10402나 10531 같은 숫자로만 인식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둘의 차이는 바로 ‘주체적 의미 찾기’에서 나온다. 투명한 양파껍질처럼 우리를 둘러싼 숫자들에는 개성도 없고 온기도 없다.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에는 인간적 고민과 체온이 생략된다. 오직 하나의 가치 기준에 의해 정신은 균질화되고 비교 평가의 수단이 되어 간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는 ‘나 다움’을 열망하는 부글거림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자아정체성의 핵심이다. 정체성은 내 속에 있는 개성과 특징을 잘 이해하고 발휘할 때 형성된다. 그래서 나만의 고유성을 타인으로부터 확인받을 때 존재감은 그만큼 높아진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불러줄 때, 학생들은 특별한 친밀감을 느낀다. 자신이 무표정한 사물들과 구별되어 독립적 인격으로 대접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편리할 때 쓰고 잊으면 그만이지 학번이 그리 중요할까. 사실 문제는 학번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다. 나를 바라보는 가치관은 세상을 인식하는 창이 되는 법.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의식의 체에 걸러 되짚어 보자. 내 안의 갈등을 직시할 때 세상의 무늬도 한층 새로워 질 것이다. <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옛 사람들은 ‘근정전(勤政殿)’, ‘심우장(尋牛莊)’처럼 집과 건물에도 저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102동 1308호’와의 차이를 생각해 보고 그 느낌을 이야기해 보자. 2. ‘100점짜리 인간’과 ‘1004같은 사람’은 그 표현과 의미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3. 우리 선조들은 이름 외에도 ‘자’나 ‘호’를 가졌다. 우리도 각자 의미를 담아 자신의 호를 짓고 느낌을 이야기해 보자. 4. 학교에서 학생들은 이름 불러주기를 바라면서도, 이름표를 곧잘 가린다. 그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5. 다른 사람이 ‘나의 이름’을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일까? 이름과 ‘진짜 나’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주제를 다각도로 살펴 보려면? *‘만약에’와 ‘다른 방식은 어떨까’를 사용해 보세요. ‘만약에’는 가상적 상황을, ‘다른 방식은 어떨까’는 또 다른 현실을 찾아보게 합니다. 권희정/서울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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