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학교의 결정에 따라 2년간 계속해서 사설 모의고사를 응시해왔다. 공인 교육청 모의고사는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은 1년에 4번만 응시하고, 고등학교 3학년은 수능시험을 제외하고 평가원 모의고사를 합하여 1년에 5번 응시한다. 그러나 사설 모의고사가 더해지면 응시횟수가 최소 10회 이상으로 늘어난다. 1달에 적어도 1번은 응시하게 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데 이런 요소로 인해 부산의 고등학생들에게 모의고사는 어느새 학교 생활의 일부분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 4월이 되어서야 전교조에 의해 '불법' 사설 모의고사 응시실태가 공개되었다. 이로 인해 그 동안 학생들과 학교가 불법행위를 공공연히 자행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각인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교에서는 전교조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시험 감각의 유지'나, '수도권 학생과의 격차 최소화'를 들먹이면서. 헌데 저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교육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수도권,특히 강남 8학군을 축으로 하는 사교육 열풍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사교육비 차이도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비수도권과 강남을 비교하겠다 치면 문제가 어디까지 확산되어버릴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 격차를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시도로 사설 모의고사를 응시한다고 말한다면, 이에 대해서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다 해도,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니까. 게다가 수도권, 특히 강남에서는 '논술' 교육까지 아무런 부담없이 사교육비로 지출시키는데, 비수도권에서 '논술' 교육을 위한 사교육비를 투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웬만해서 재력이 된다고 하는 집안에서도 '논술' 교육에 사교육비를 투자한다는 것은 힘든 실정인데, 이런 상황에서 비수도권 학생들은 오로지 '수능 점수'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쩌면 그 때문에 사설 모의고사가 빈번하게,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표본은 부산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국공립 고등학교와 사립 고등학교의 수능점수 평균을 비교할 때 사립 고등학교의 평균이 월등히 높게 나온다는 통설이 있다. 국공립 고등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설 모의고사의 응시여부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지만, 사립 고등학교는 그런 면에서는 국공립 고등학교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다. 이것은 사립 고등학교의 사설 모의고사 응시횟수가 국공립 고등학교에 비해 많은 것에서 기인한다. 결국에는 사설 모의고사를 '불법'으로 규정해 놓은 교육부의 책임인가? 교육부에서는 교육 서열화와 사교육비 부담을 막기 위해서 사설 모의고사를 불법으로 규정해 놓았다고 하는데, 그 실태를 알고 보면 교육부에서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 하다. 사설 모의고사를 '불법'으로 규정해도 교육 서열화와 사교육비 부담은 여전하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버렸다. 대학의 서열화는 이미 그 역사가 오래되었고, 고등학교를 보아도 수능점수 평균에 따라 학교간 서열이 새롭게 편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교육 서열화와 사교육비 부담만이 아닌,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불법행위'를 방관한 것이겠지만. 2006년 5월 17일. 사설 모의고사 응시일로 예정된 날이었다. 이번에는 진학에듀에서 주관하는 사설 모의고사였다. 시험 응시시간이 계속해서 늦어지길래 '오늘도 4월 7일처럼 취소되는건가?'하는 생각도 들었고, 소문에 따르면 '(부산교총 회장인)교장이 전교조의 사설 모의고사 고발조치에 대해서 반박했는데, 그 때문에 전교조에서 우리 학교를 주시하고 있다.' 고도 했다. 결국 시험은 응시예정시간인 8시 40분에서 무려 50분이 지난 9시 30분에야 시작되었는데, 시험을 응시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가 범죄자의 오명을 써가면서까지 이런 시험을 쳐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교육부는 왜 애초에 사설 모의고사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6년 4월 8일,부산일보에 '고교 불법 모의고사 판친다.'이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난 다음날이었다. 그 날도 별 일 없이 부산일보를 읽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눈에 띄인 기사가 하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기사는 아니고 기자의 취재후기와 같은 코너였는데, 그 코너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문구가 하나 있다. 'A학교 선생님이 본보에 전화를 걸어 "학생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 것이냐."고 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저런 식의 문구였는데,나도 소위 '범죄자' 처지에 놓인 학생이다 보니 저 문구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불법행위를 공공연히 저지르고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없었다는 것은 나 자신부터가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제 5월 17일도 지나간다. 결국 오늘 사설 모의고사는 국공립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부산 소재 사립 고등학교에서 모두 실시했다. 이제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학교는 어떻게 될까? 이것을 교육부와 전교조에 대한 선전포고로 파악해야 하나? 문제를 해결할 답은 두 개가 있다. 사설 모의고사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느냐, 사설 모의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느냐. 둘 중에 어떤 답을 선택하든지 후폭풍은 크다. 전면적으로 인정한다면 전교조의 반발이 거셀 것이고, 처벌을 강화하면 학생들과 학교가 순식간에 공식적인 범죄자가 된다. 그러나 가장 궁극적인 문제는 하나다. 사설 모의고사에 대한 재평가와 검토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사설 모의고사를 불법으로 규정한 효과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사설 모의고사를 전면적으로 인정할 경우에 교육 서열화와 사교육비 부담면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인지. 교육부, 전교조, 한국교총, 학생, 학교.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다. 그들의 선택에 한국 교육의 미래가 바뀔 지도 모른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일 지는 모르지만, 알고보면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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