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본래의 내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곤 하였다. 소영이와 홍주, 지금까지도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소중한 친구로 남아있는 친구들도 그때 같이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놀이터에서 놀며, 우정을 쌓았었다. 난 아무래도 그때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다녀야하는 학교를 피해 어디론가 가고싶어 했는거 같다. 나는 캐나다로 유학을 가자는 엄마의 말이 매우 반가웠다. 하지만 2주일후, 갑자기 엄마가 유학목적지를 캐나다에서 중국으로 바꾸었다. 중국에 한번 가본적이 있었다. 8살때, 교회에서가는 의료선교단기에 엄마를 따라 가본적이 있다. 난 거기서 정말 생고생을 했다. 상차이 (중국의 특유한 향내가 나는 향초라고나할까) 가 들어간 밥은 도저히 먹지못했고 화장실도 정말 말할수없이 깨끗하지 못해서 들어 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 엄마가 갑자기 내가 상상하기에 아주아주 아주 좋은 캐나다에서 그 냄새나고 더러운 후진국인 중국으로 가려니까 기분이 안 좋았다. 엄마에게 항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아직 11살이고 너무나 어렸던 나의 의견은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5학년 2학기를 마치고 드디어 엄마와 함께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내가 무슨생각을 했는지는 생각 나지 않는다. 그저, 중국공항에 도착하고 이미 마중나온 아는분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타고 집을구하러 부동산에 가고있을때, 창문에 비친 바깥 가게 간판이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쓰어져 있어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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