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스승의 날에, 교복을 입고 있지만 모두 졸업생들이다. 앞의 빨강머리 유난히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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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문이 열리는 순간, 촛불이 켜지고 폭죽이 터지며 아이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촛불을 끄면 박수가 쏟아지고 교사는 케이크를 잘라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반장이 쫓아나와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보며 ‘촌지’를 떠올리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속 썩이던 몇 몇 녀석들이 함께 노래하며 짓는 어색한 표정이 더 크게 다가올 뿐이다. 그러면 한 마디 속으로 한다. ‘짜식들…. 진작에 잘하지.’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래도 내 제자이기에 손을 놓지 않는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진솔이’라고 한다. 소나무와 같이 늘 푸르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데 지금까지의 교직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자연스레 ‘진솔이 0기’라는 식으로 저희들끼리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보았다. 특히 오늘(스승의 날)이면 내가 맡고 있는 교실이 꼭 찬다. 재학생은 물론이고 졸업생 녀석들도 모두 교복을 입고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린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새벽에 등교한 뒤 교실에 들어가서 재학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함께 숨죽이고 기다린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면 모두 교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졸업생들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낯이 익숙한 녀석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졸업한 지 불과 3개월 정도. 아직도 아이들은 내게 고3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잠시 뒤, 이윽고 교실 분위기가 눈에 들어오면 “어, 너 여기 웬 일이니?” 그제서야 재학생이고 졸업생이고 한바탕 배를 잡는다. 선배들에게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재학생들에게는 같은 담임에게서 배운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가라고 해도 너스레를 떨면서 기어이 내 수업을 듣고서야 전교를 돌아다닌다. 교복을 입고 다녀 가끔은 선생님들께 주의를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혼내시는 선생님이 된다. 그러나, 올해는 우리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학교가 쉬기 때문이다. 이렇게 쉬는 것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놀기 좋아하는 교사들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임시로 쉬고 나면 오히려 더 힘들다. 정해진 수업에다가 오늘 하지 못한 수업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가능하면 출장도 잘 안 갈려고 한다. 수업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늘이 더 무거운 것은 교사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사회 분위기이다. 안타깝다. 아직도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소외된 아이들이 있을까 두루두루 살핀다. 혹시라도 편견을 가질까 행동을 주의하면서 최선을 다한다. ‘DN선생님~ 넘넘 보고 싶은데 찾아갈 수가 없네요. ㅜㅜ 선생님 감사합니당당’ 아침부터 계속되는 진솔이 녀석들의 문자를 보면서 지금 이 시간 내가 있을 자리가 어디인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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