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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5 15:47 수정 : 2006.05.15 15:47

작년 스승의 날에, 교복을 입고 있지만 모두 졸업생들이다. 앞의 빨강머리 유난히 돋보인다.^^

오늘,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내가 교사가 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오늘처럼 ‘스승의 날’에 쉬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 날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교실마다 바깥에서 들여다보지 못하게 가리고 자기들끼리 무언가 준비한다. 풍선을 불어 칠판을 장식하고 형형색색의 분필로 무어라고 잔뜩 써놓는다. 준비가 끝나면 학급반장은 시치미를 떼고 교무실로 온다.

“선생님, 아무개가 쓰러졌어요.”

제법 호들갑스럽게 연기를 하지만 이미 담임교사는 그 속사정을 다 알고도 속은 체하며 교실로 간다.


교실문이 열리는 순간, 촛불이 켜지고 폭죽이 터지며 아이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촛불을 끄면 박수가 쏟아지고 교사는 케이크를 잘라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반장이 쫓아나와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보며 ‘촌지’를 떠올리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속 썩이던 몇 몇 녀석들이 함께 노래하며 짓는 어색한 표정이 더 크게 다가올 뿐이다. 그러면 한 마디 속으로 한다. ‘짜식들…. 진작에 잘하지.’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래도 내 제자이기에 손을 놓지 않는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진솔이’라고 한다. 소나무와 같이 늘 푸르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데 지금까지의 교직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자연스레 ‘진솔이 0기’라는 식으로 저희들끼리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보았다.

특히 오늘(스승의 날)이면 내가 맡고 있는 교실이 꼭 찬다.

재학생은 물론이고 졸업생 녀석들도 모두 교복을 입고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린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새벽에 등교한 뒤 교실에 들어가서 재학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함께 숨죽이고 기다린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면 모두 교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졸업생들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낯이 익숙한 녀석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졸업한 지 불과 3개월 정도. 아직도 아이들은 내게 고3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잠시 뒤, 이윽고 교실 분위기가 눈에 들어오면

“어, 너 여기 웬 일이니?”

그제서야 재학생이고 졸업생이고 한바탕 배를 잡는다.

선배들에게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재학생들에게는 같은 담임에게서 배운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가라고 해도 너스레를 떨면서 기어이 내 수업을 듣고서야 전교를 돌아다닌다. 교복을 입고 다녀 가끔은 선생님들께 주의를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혼내시는 선생님이 된다.

그러나, 올해는 우리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학교가 쉬기 때문이다.

이렇게 쉬는 것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놀기 좋아하는 교사들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임시로 쉬고 나면 오히려 더 힘들다. 정해진 수업에다가 오늘 하지 못한 수업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가능하면 출장도 잘 안 갈려고 한다. 수업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늘이 더 무거운 것은 교사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사회 분위기이다. 안타깝다. 아직도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소외된 아이들이 있을까 두루두루 살핀다. 혹시라도 편견을 가질까 행동을 주의하면서 최선을 다한다.

‘DN선생님~ 넘넘 보고 싶은데 찾아갈 수가 없네요. ㅜㅜ 선생님 감사합니당당’

아침부터 계속되는 진솔이 녀석들의 문자를 보면서 지금 이 시간 내가 있을 자리가 어디인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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