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5.15 14:51 수정 : 2006.05.15 14:51

-청구중학교 설악산 기행-

4월26일 아침 청구중학교 운동장은 소란스러웠다. 바로 이날 우리 2학년들이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엔 수학여행을 가기 싫었지만 막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설악산은 그렇다 치고 고구려의 유적인 온달산성을 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설래 이기도 하였다. 버스에 올라타 한 몇 십분 지나니 드디어 차가 출발하였다. 버스는 그렇게 한참 달렸다. 달리는 도중 영화를 틀어주었는데 난 영화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리어 시끄러울 뿐이었다. 그 놈의 영화 때문에 바깥의 경치구경도 하지 못했고 신경 쓸 일이 있어 신경을 좀 썼더니 머리까지 어질어질 하였다.

마침내 우리들의 첫 코스인 단양 온달산성에 도착하였다. 온달산성에 도착하여 산을 올라가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모른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돌부리들과 경사진 지형 등등.... 나는 이 산을 올라가면서 왜 고구려사람들이 그토록 산성(山城)을 쌓고 적군에 대비하였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아무튼 산에 올라가는데 열중하며 올라가다 보니 온달산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온달산성을 보자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왜냐하면 내 눈으로 직접 온달산성이 전형적인 고구려식 산성임을 알게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고구려 산성을 본 그 자체만으로도 난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전형적인 고구려의 산성 양식인 치가 눈에 들어왔다. 치는 고구려와 발해만의 독특한 축성방식이다. 또한 들여쌓기 한 부분도 눈에 들어왔다. 들여쌓기 또한 전형적인 고구려의 독자적인 축성방식인데 이렇게 쌓으면 성이 몇 천년을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온달산성을 둘러보다가 사진 한 컷 찍은 후 산을 내려왔다. 산에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싸온 김밥과 간식을 먹으니 산에 올라간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 나 혼자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온달관에 들어가 보니 너무나도 전시 내용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전부 고구려 역사를 글로 요약해 적어놓은 것뿐이었다. 온달관에서 실망하고는 온달동굴로 갔다. 온달동굴에 들어가 보니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면서 무섭기까지 하였다. 또 군데군데 쪼그려 뛰기 해서 가야하는 부분이 있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단양을 출발한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곧장 영월 장릉으로 내달렸다. 장릉을 올라가는 길은 평탄하여 온달산성을 올라가는 길과 대조되었다. 장릉을 보며 나는 단종의 비극을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숙부(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죽음까지 당한 단종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도 지어보았다. 또 생육신과 사육신의 충복 또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두 코스를 왔다갔다하느라고 지쳐있었다. 얼른 숙소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설악동 숙소에 도착하여서는 씻고 쉬기만 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그 다음날인 4월27일, 난 새벽 일찍 재일 먼저 잠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친구들을 깨웠다. 우리는 오전 코스로 설악산 울산바위로 향했다. 이 날 따라 날씨도 참으로 좋았다.

우리 일행은 흔들바위에 도착하여 울산바위를 보고는 흔들바위를 흔들어 보았다. 나는 흔들바위를 흔들며 제발 스트레스 좀 받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다른 경치들을 보게 되었다. 아니 올라갈 때는 못 봤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려오면서 산 곳곳을 둘러보니 참 아름다웠다. 특히 나무 색들의 조화는 설악산이 왜 그리도 유명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흰색, 연노랑색, 녹색, 분홍색 등의 조화는 자연이야말로 조화의 산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또한 웅장한 기암절벽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와 계곡의 소리는 나의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산에 내려오면서 마지막에 다람쥐를 보게되는 행운을 얻었다. 자연이 자연에 감동한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같았다.

오후 코스로는 설악산 비룡폭포를 가게되었다. 비룡폭포로 가는 길은 전부 바위고 계단이라 험하면서도 미끄러웠다. 올라가면서 설악의 많은 폭포들을 보게 되었는데 약간 아찔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비룡폭포에 도착하여 물수건을 빨다가 그만 물수건을 놓쳐 물수건이 물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물수건은 계곡을 내려가기 싫었는지 약간 내려가다 멈추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른 바위를 넘어 달려가서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물수건을 주웠다. 물수건 덕분에 비룡폭포 계곡에 발도 담그어 본 것이었다. 또 물이 1급수라기에 한번 마셔보기도 하였는데 이런 물을 주는 설악산이 신비로워 보이기만 하였다. 하산하면서 기암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나있는 소나무를 보게 되었는데 소나무의 생명력이 참 끈질기게만 느껴졌다. 이어령 교수의 소나무 해석이 생각나 흐뭇했다.


문제는 하산하고 나니 너무나도 피곤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젯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피로까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하여 일찍 잠들었다. 자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녘이었다. 간간히 새소리도 들려왔다.

아침밥을 먹고 우리들은 설악산 비선대로 향했다. 비선대의 길을 평탄하기만 하였는데도 어제보다 더 힘들기만 하였다. 아마도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다. 비선대에 올라서 건너편 깎아지를 듯이 서있는 바위를 보며 사진을 찍고는 하산하였다. 이제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내 기분은 두둥실 떠있었다. 대구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박삼일 간의 설악산 기행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