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31 20:03
수정 : 2016.03.31 21:31
이종우의 흐름읽기
‘선거 전에 악재 없다’라는 월가의 격언이 있다. 대사를 앞둔 상황에서 부정적인 재료를 내놓을 정도로 정부가 바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선거와 주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건 ‘87년부터 92년까지’ 5년간이다. 영향력이야 그 이전이 훨씬 강했지만 당시에는 주식 시장이 너무 작아 의미를 부여할 정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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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 전후의 주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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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을 두달 앞둔 시점부터 정부가 하루 한 건씩 개발 공약을 내놓기 시작했다. 민주화 투쟁으로 수세에 몰린 집권당이 사활을 걸고 선거에 임한 때문인데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서해안 개발, 고속전철 건설부터 외국인에 대한 주식시장 개방까지 표를 모을 수 있는 거면 뭐든 가리지 않았다. 시장에 호재였던 게 분명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공약 내용보다 집권 세력이 바뀔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한 건 대선이 끝난 후부터였다. 집권당 후보가 당선돼 정국이 안정될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3저 호황으로 상승 에너지가 충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불안으로 힘이 제대로 분출되지 않았던 것도 상승 이유였다. 집권 세력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다음해 총선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는데, 사상 처음 여소야대가 만들어진 총선 다음날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1992년 대선은 주로 기업 단위에서 영향력이 나타났다. 정주영 회장이 선거 판에 뛰어들면서 현대그룹 주가가 선거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현대그룹이 각종 정치적 압력에 시달릴 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1992년이 지나면서 선거와 주가의 관계가 빠르게 약화됐다. 투자자들의 경험이 쌓이고, 특히 집권당이 바뀌어도 사회 안정이나 경제에 별 차이가 없더라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시장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우리 투자자들의 반응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나다. 해당 사안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항상 짧고 강하게 반응을 한 후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1979년 10·26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식 시장은 일주일 가까이 거래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랬던 투자자들이 다양한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점점 내성을 키워 이제는 대통령 탄핵은 물론 서해에서 교전이 일어난다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선거는 최고의 정치 이벤트다. 당연히 ‘짧고 강한 영향’이란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총선기간에도 시장은 별반응을 보이지 않을 걸로 전망된다. 투자자들이 정치적 이벤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일시적으로 올라가면 매도로, 반대의 경우에는 매수로 대응해 주가 흐름을 바로잡아 나갈 것이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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