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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잔재에 신음하는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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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6일 단행된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발한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고질적인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으로 쌓였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시위가 날로 확산하는 추세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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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축구·커피·빈곤·반미 이미지로 연상되는 중남미는, 한국한테는 아직 알고 있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게 더 많은 대륙일 것이다. 그런데도 칠레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최초로 맺은 국가, 중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와인이 유명한 나라 등 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나라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칠레 시국은 우리가 알고 있던 칠레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현재 칠레 산티아고 중심부 광장에선 시위대와 경찰이 저녁마다 맞서고 있다.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흩날리며 물대포와 방화 자국이 선명하다. 대중교통과 상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휴교도 빈번하다. 마트와 약국에서 생필품 사재기를 하며, 분유를 가슴에 안고서 안도하는 표정으로 집에 돌아가는 가장 모습도 자주 보인다. 최근 한 언론이 보도한 30년 이상 칠레에 살고 있는 교민 인터뷰를 보면 그조차 칠레 혼란이 낯설기만 하다고 한다.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칠레 모습일까?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 칠레 속사정을 좀더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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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24일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기초연금 수령액을 20% 올리고 최저임금을 17% 올리겠다는 등의 복지 개선안을 포함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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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요금 인상이 발단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칠레 시위의 표면적인 시발점은 우리 돈으로 50원 수준인 지하철 요금 인상이었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중남미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선진국 모임으로 여겨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칠레가 단돈 50원 때문에 한 달도 안 남겨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조차 치르지 못할 수준의 혼란을 겪은 배경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따라서 반정부 시위로 표출되는 칠레 국민의 분노는 그동안 곪을 대로 곪다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터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와 관련해 거리 시위대가 사용하는 팻말 문구 가운데 ‘1973=2019’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1973년은 칠레 현대사에서 중대한 변곡점이 되던 해다. 그해 9월 당시 육군 장군이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초헌법적인 기구인 ‘군사평의회’를 만들어 헌법 효력을 정지했고, 1970년 칠레 최초 민선 사회주의 정권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전복한 뒤 1990년까지 17년 동안 집권했다.
피노체트는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화 인사를 암살하고 탄압했을 뿐 아니라, 인권과 언론 자유도 무참히 억눌렀다. 2015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피노체트 집권 기간에 인권탄압 피해자는 4만여 명, 사망·실종 인사는 3225명에 이른다. 이 여파로 피노체트 집권 기간 칠레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거센 비난을 받는다. 이와 관련한 조처로 1974년 미국은 칠레에 차관과 무기 판매를 금지했다. 피노체트는 내부적으로도 강한 국민 저항에 부딪히자, 통치 정당성 근거를 물가안정과 경제개발에서 찾으려 했다.
당시 칠레 경제 상황을 보면 1974년 공식 인플레이션은 370%에 이르렀고, 실업률은 인구 절반 이상이 집중된 수도권 기준으로 20%를 상회했다. 이 상황에서 군사정부는 미국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들,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를 경제관료로 대거 등용했다. 1975년에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 교수를 칠레로 초청해 경제회복 정책을 수립해 발표했다.
칠레는 이 과정에서 엄격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시카고학파 이론을 경제모델 근간으로 채택하고, 오늘날까지 칠레 경제정책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칠레는 중남미는 물론 전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 최초로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나라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최초의 신자유주의 채택국
신자유주의 방침에 따라 1975년 4월 칠레 정부는 40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해 소비재 가격 규제와 공공지출을 축소하는 충격요법을 단행했다. 1974~81년에는 국영기업 민영화를 대거 추진했다. 그 결과 259개 국영기업 가운데 단지 14개 기업과 1개 은행만이 국가 소유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칠레 전력시장은 송전·배전·발전 모든 부문이 완전히 민영화되고 만다.
수출 증대 정책과 관련해서는 1973년 평균 94% 관세율을 1978년 14%로 대폭 내림으로써 국내시장을 국제사회에 완전히 개방하게 되었다. 자산 취득세 폐지 같은 각종 감세 정책도 단행했다.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피노체트 집권기에 칠레는 연평균 6% 성장률이라는 경제 호황을 누렸다. 당시 중남미 국가 평균 성장률이 2%대였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가시적인 경제 성과는 군부정권 퇴진 뒤 오늘날까지 칠레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 경제 기조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근거로 작용했다.
칠레가 외형적인 경제 성장을 하는 동안, 이면에선 양극화란 갈등의 불씨가 자리잡고 있었다. 급진적인 민영화는 전력, 광업, 통신, 수자원 같은 기초 공공서비스 부문에서도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본을 가진 소수 경제 집단이 매입해 공공 부문에서 그들만의 독점 구조를 형성한다.
그 결과, 칠레의 공공서비스는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력회사는 인구와 산업시설이 적은 칠레 남부에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여전히 전기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전력 단가도 매우 비싸게 제공하고 있다. 기온이 낮은 이들 지역 주민은 장작을 때며 생활하는 경우가 흔하다.
전력뿐 아니라 여러 공공요금 역시 시장 물가 상승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지속해서 오른 결과 한국의 2배 이상 수준으로 치솟았다. 칠레 월 최저임금이 우리 돈으로 50만원이 안 되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 서민이 느끼는 칠레 물가는 살인적인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력·교육·연금·의료 민영화 민낯
피노체트 정권은 재정 악화를 우려해 국민 복지와 관련된 연금·의료·교육 부문에서도 민영화를 추진했다. 칠레 헌법에는 국민의 인간적인 삶과 밀접한 분야에 국가 책임을 명시하는 내용이 없다. 그 결과 시장논리에 따라 손해 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성장은 매년 두드러지지만, 국민이 받는 혜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반 봉급자가 30년 동안 연금을 납부해도 최저임금을 밑도는 수준인 월 20만원을 받는 구조다. 또 국민의 80%는 수십만원에 이르는 고액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열악한 국립병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진료를 잡으려면 한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 더불어 의약품 가격 역시 중남미 국가 가운데 가장 비싸, 병원 문턱만큼이나 약국 문턱도 일반 국민에게는 높다.
교육 부문도 사정은 똑같다. 대학교 등록금 수준이 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가장 비싸, 대졸자는 국민의 20% 수준에 그친다. 대학 졸업 뒤에도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학자금 빚을 갚아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시위대는 경제 양극화의 주범이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헌법에 있다고 주장하며 개헌을 요구한다.
칠레의 경제 양극화 상황이 심각한 것은 수치로도 잘 드러난다. 소득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8(1은 완전 불평등)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이 상황이 30년 동안 쌓이면서 경제 양극화만큼이나 사회 양극화도 진행됐다. 물론 그동안 작은 시위는 있었지만 정책결정권자에게 시민 목소리가 전달되는 경로는 광장으로 제한되면서 정책 반영이 쉽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 목소리는 중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라는 칠레 이미지와 소수가 이끌어가는 외형적 성장에 더욱 가려질 뿐이었다.
칠레 내부에 갈등이 쌓이던 중 국민 정서와는 전혀 상반되게 지하철 요금이 추가 인상됐고, 이에 맞서 시위하는 학생에게 칠레 경제부 장관이 “조조할인을 이용하라”는 엉뚱한 말을 해 분노를 부추긴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는 군사정권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국민에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거리에 군경을 배치함으로써 분노를 더욱 키웠다. 그 결과 한 달이 다 되도록 시위가 퍼지며 장기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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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반정부 시위대는 경제 양극화의 주범이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헌법에 있다고 주장하며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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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주범 헌법 폐지 요구
다행히 현재 정부와 시위대 갈등은 강대강으로 치닫지 않는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하자 피노체트 집권 이후 30년 만에 처음 시행한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고 APEC 정상회담까지 취소하면서 시위대 목소리를 반영한 공약을 제시하는 등 억압적 방식보다 국민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도 30년 만에 분출된 국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부정권이 종식된 뒤 칠레 정부는 1991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가해자에게는 사죄를, 피해자에게는 용서를 촉구하며 정치·사회적 화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제 양극화로 화해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탓에 시위대 울분은 더 컸을 것이다.
어쩌면 피녜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칠레가 겪는 상황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칠레가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겪는 일종의 성장통일 수 있다. 이 과정이 일부 극단적인 세력에 의해 칠레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시위대와 정부 모두 비폭력 원칙에 따라 대화를 전제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두 원칙에 따라 칠레가 성장통을 잘 견뎌낸다면 칠레 얼굴은 우리가 익히 알던 것처럼 다시 밝아지고, 그 미래도 더욱 희망찰 것이다.
조윤후 코트라 산티아고무역관 과장
jyhoo@kotra.or.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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