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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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 “이번 설엔 독촉장 대신 쌀포대를”
남중수 케이티 사장님께! 고객이 요금을 연체하면 케이티는 ‘불량가입자’라는 딱지를 붙여 전화를 해지하거나 통신 이용을 제한합니다. 요금 연체 사실을 다른 업체들과 공유해, 다른 업체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게 합니다. 연체자 명단에 오르면, 그 가입자는 다시 신용불량자로 몰려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취업을 할 때 불이익을 받습니다. 서비스를 이용하고 요금을 안냈으니 불이익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입자쪽에서 보면 여간 난감한 게 아닙니다. 가정 가입자의 시내전화 요금은 기껏해야 월 1만~2만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정도 요금도 내지 못할 형편이라면 하루 세끼 끼니인들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케이티에서 일하다 퇴직한 뒤 전화상담 일을 하고 있는 분에게서 들은 얘깁니다. 한 애기 엄마가 전화를 걸어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애기와 함께 죽는 것밖에 없다”고 하더랍니다. 애기 엄마는 “한됫박 정도 남은 쌀로 애기에게 암죽을 쒀 먹이고, 나는 굶고 있다”며 “수중에 몇만원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며 전화를 끊었답니다. 시내전화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이동전화에 비해 요금이 가장 싸기 때문입니다. 전에 살던 다세대 건물의 반지하에 사는 분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날품팔이 노동자였는데, 일이 없을 때는 전화기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거리가 생겼으니 나오라는 ‘십장’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CEO(시이오)와 성직자’라는 책을 보면, ‘착한기업’이 매출과 이익을 더 낸다고 합니다. 책은 도시가스 공급업체 키스팬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키스팬이 우리나라 통신업체들과 같다면, 요금을 내지 않는 고객에게는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겁니다. 하지만 키스팬은 연체자의 요금을 감면하고, 살림살이를 챙겨주고 있다고 합니다. 연체자를 대상으로 취업 알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고객들로부터 ‘사랑과 영혼이 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답니다. 사장님! 곧 설입니다. 취임 뒤 맞는 첫 명절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설에 연체자 가운데 형편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가정 가입자를 골라 밀린 요금을 감면해 통신을 계속 이용하게 하고, 쌀 한포대씩이라도 보내 가족끼리 따끈한 떡국 한그릇씩 나누며 명절을 지낼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사장님은 취임 뒤 공익성과 상생을 강조하며, ‘원더경영’을 통해 고객을 놀라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케이티 임직원들의 이름으로 독촉장 대신 쌀 포대를 보내주면, 그들이 정말로 놀라지 않을까요. 왜 케이티를 찍어 이런 부탁을 하냐구요? 케이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통신업체이기 때문입니다. 통신업계의 ‘맏이’로써 모범을 보여달라는 뜻도 있구요.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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