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거름종이” “표현자유 재갈” 정부가 사이버폭력을 줄이는 방안으로 ‘인터넷 실명제’와 ‘인터넷 콘텐츠 사전 심사제’ 도입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전 검열을 통해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맞서고 있다. 사이버폭력 막기 위해 필요=인터넷 실명제와 콘텐츠 사전 등급심사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14일 이해찬 총리가 “사이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와 콘텐츠 사전 등급심사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언론까지 이른바 ‘개똥녀’ 사건 주인공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고, 댓글을 통해 욕설이 난무한 사례를 들어 인터넷 실명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인터넷 실명제와 콘텐츠 사전 등급심사제 모두 도입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라봉하 정통부 정보이용보호과장은 “인터넷 실명제를 포함해, 익명성에 따른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관광부는 인터넷 콘텐츠를 비디오물에 포함시켜, 인터넷에 올릴 때는 사전에 등급심사를 받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콘텐츠등급제와 함께 검토지시
네티즌들 “주민번호 도용등 부작용”
정통부선 “실명확인 우대제가 적당” 효과보다 부작용 크다=하지만 상당수 네티즌 및 시민단체들은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다며, 인터넷 실명제와 콘텐츠 사전 등급심사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2001년 게시판 실명 확인제와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도입하려다 포기한 것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여론에 밀렸기 때문이다. 네티즌 김지연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인터넷은 꼭 필요한 익명의 공간”이라며 “새로운 열린 공간으로 간주돼야지,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정화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남의 주민등록번호 도용을 부채질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이미 일부 정부기관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서 하고 있는 이용자 실명 확인은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하고 있다. 시민단체 전문가는 “실명제가 주변에 널려 있는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작정하고 사이버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콘텐츠 등급심사제도 표현의 자유 위축과 함께, 따르지 않아도 제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데 서버(컴퓨터)를 외국에 두고 운영하면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과 도용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정부 정책에 어긋나는 문제도 있다. 반대 목소리는 정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실명 확인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반대하는 쪽의 논리도 분명한 만큼, 지금은 ‘실명확인우대제’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온라인 콘텐츠 내용등급은 이미 민간 자율에 맡긴 상태”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전문가는 “인터넷 실명제나 콘텐츠 등급심사제 같은 물리적인 방법을 쓰면, 숨박꼭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정기능을 살려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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