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6 18:52
수정 : 2006.07.2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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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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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기자의 @어바인 통신
네트워크 기술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갈 때였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이동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으나 곧 끊겼다. 단말기에 남겨진 전화번호로 되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주변에 건물이 많은 곳인데도, 기지국에서 보내는 전파 수신 감도를 나타내는 안테나 옆 막대 표시가 하나도 뜨지 않았다.
미국에서 살면서 이동전화가 연결되지 않거나 통화중 끊겨 되걸기를 반복하는 경험을 자주 한다. 바로 통화에 성공하는 확률이 열에 서넛을 넘지 않는 것 같다. 나머지는 아예 연결되지 않거나, 통화 대기음이 몇번 들린 뒤 메시지를 남겨 달라는 음성안내에 이어 삐~하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끝난다.
실제로 미국은 땅이 넓어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동전화가 무용지물이 된다. 도시에서도 기지국이 보내는 전파를 잡지 못해 전화 연결이 안되는 곳이 많다. 특히 건물 지하나 엘리베이터에서는 대부분 안된다. 꼭 받아야 할 전화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자동응답 상태로 만들어 음성메시지를 남기게 하는 미국 사람들의 이동전화 사용 행태도 통화 성공률을 낮춘다.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동전화 단말기를 자동응답 상태로 두는 경우가 많다.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미국이 부럽다는 생각도 된다. 이동전화가 연결되지 않거나 상대방 단말기가 자동응답 상태로 돼 있어도 뭐라 하지 않는 게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가는 직장인들의 경우 상사로부터 ‘너 거래처 간답시고 나가서 찜질방 가서 놀다왔지?’라는 질책을 듣고, 근무태만자로 찍히기 십상이다. 퇴근 뒤나 휴일에 전화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한 소리 듣는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반에는 지하철, 건물 지하, 산이나 계곡에서 통화가 안됐다. 당시 직장인들은 상사에게서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으면 “그 때 지하철 타고 있었다”라거나 “그 때 고객과 지하다방에서 얘기 중이었다”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휴일에는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됐다. 낮은 통화품질을 핑계로 근무 중 휴식을 취하고, 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이동전화 통화품질은 미국 것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품질이 뛰어난 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극장이나 공연장에서는 물론이고 회의를 할 때도 늘 이동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고, 이동전화 벨이나 진동이 울리면 만사 제쳐두고 전화부터 받는 우리나라 이동전화 이용자들의 행태를 떠올리면, 좋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우리나라 이동전화 이용자들은 좋은 이동전화 품질 탓에 퇴근 뒤나 휴일도 보장받지 못한다. 꼼수를 부려 벗어나고 싶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동전화 통화품질 때문에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사장님! 부장님! 팀장님! 직원이 이동전화를 받지 않으면 밖에서 놀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말고 미국처럼 통화품질 탓으로 여겨주시면 안될까요?”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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