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4 19:57
수정 : 2006.06.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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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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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기자의 @어바인 통신
미국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다. 아는 사람에게 전화로 주소를 알려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집을 찾아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 곳에 오래 사셨나 봐요. 주고만 갖고도 정확히 찾아오시는 거 보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인터넷에 주소만 입력하면 위치를 동네 지도에 표시해주고, 가는 길까지 안내하는 서비스 있는 거 모르세요?”라고 되물으면서 컴퓨터 프린터로 뽑았다는 지도를 보여줬다.
지도에는 그의 집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길이 상세하게 표시돼 있었다. 총 거리가 얼마고,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는 것까지 한국 인터넷의 지도검색 서비스에 비해 훨씬 정리가 잘 돼있었다. 그는 “야후 맵퀘스트를 포함해 여러 곳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주소만 있으면 초행 길이라도 다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대체로 누구와 만날 약속을 하거나 식사 초대를 받을 때 주소를 물어보고 이 서비스를 이용해 약속 장소를 찾아간다. 호텔이나 관광지 홈페이지에도 대부분 이런 서비스가 붙어있다. 최근 직접 운전해 3천마일 정도 되는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 서비스 덕분에 출발 전 미리 예약해둔 숙소와 여행지를 모두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과 네비게이션를 중심으로 지도 검색과 길 안내 서비스가 크게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친절하고 상세한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다. 길 이름과 이정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은데다 디지털화 상태도 거칠다.
우리나라는 전기와 전화 같은 서비스 이용료를 비싸게 받아 마련한 재원으로 질 좋은 통신망을 전국에 깔아왔다. 또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까지 나서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컴맹’,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으면 ‘넷맹’이라고 놀려 컴퓨터 사용자와 인터넷 이용자를 늘렸다. 그 결과 정보화에선 앞선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용자쪽에서 보면, 빠른 인터넷 속도를 빼고는 크게 누리는 게 없다.
인터넷을 통해 이용할 대상, 즉 서비스와 콘텐츠 기반이 부실한 탓이다. 우리나라 국가 정보화의 실체를 보면 컴퓨터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 같은 외형적인 수치가 화려한 것과 달리 내용은 부실하다. 국가 정보화가 정보기술(IT) 업체들에게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에 치중해 추진돼왔기 때문이다. 세계 표준을 따르지 않아 아직도 매킨토시나 리눅스 사용자들은 전자정부나 인터넷뱅킹 서비스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주소만으로 길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서비스 때문에 인터넷 이용료가 비싸져도 기꺼이 이용할 것이다. 한국도 네티즌 모두가 이런 서비스를 하나 정도는 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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