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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3 09:12 수정 : 2019.06.23 09:18

[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8. 와인 보관

와인을 각자 들고 와서 마시기로 한 날은 바빠진다. 냉장고에 넣어둔 레드 와인을 약속 시각 세시간 전에 꺼내놓고, 적정한 온도에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다. 얼음으로 온도를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화이트 와인을 마셔야 할 때면 보냉 가방에 아이스팩까지 챙겨서 들고 간다. 맥주를 마실 때, 잔과 맥주를 냉동실에 넣고 기다렸다가 더욱 시원하게 마시는 것처럼 와인도 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와인은 마시는 온도가 중요하다. 가벼운 화이트, 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5~10도, 풀바디 화이트, 라이트 레드 와인은 10~15도, 풀바디 레드 와인은 15~18도에서 마셔야 한다. 풀바디에 가까워질수록, 알코올 함량이 높을수록 높은 온도에서 마셔야 한다.

온도까지 따져가며 마셔야 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온도는 와인의 맛에 큰 영향을 준다. 차갑지 않은 화이트 와인을 마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떠올려보면 간단하다. 여름에 상온에 보관한 레드 와인을 바로 마셨다가 알코올이 과하게 느껴져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 또 냉장고에서 넣어뒀던 레드 와인을 바로 꺼내 마셨다가 신맛이 과하게 올라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이처럼 마실 때 온도가 중요한 이유는 기준보다 낮을 경우엔 산도가 부각되고 높을 경우엔 당도와 알코올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와인 본연의 맛을 알지 못한 채 왜곡된 맛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와인셀러가 집에 있다면 가장 간편하지만, 누구나 셀러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화이트 와인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다지만 레드 와인은 어떻게 할까. 상온에 두자니 여름엔 실내온도가 30도를 웃돈다. 에어컨을 켜도 25도가 넘는다. 적정 온도보다 10도나 높은 온도에서 마시게 되는 셈이다. 결국 화이트 와인은 물론이고 레드 와인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다음 와인을 3시간 전에 미리 꺼내놓으면 온도가 자연스럽게 올라가 18도에 맞춰진다.

결국 나는 내 소중한 와인을 좀 더 잘 보관하기 위해서 조그만 와인 셀러를 사고야 말았다. 내가 산 셀러는 8도부터 16도까지 온도 설정을 할 수 있다. 레드 와인만 보관할 때는 16도로 설정했고, 화이트 와인만 보관할 때는 8도로 낮췄다. 둘 다 보관할 때는 12도에 맞췄다.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 바로 셀러에서 꺼내 딱 맞는 온도에서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선물 받은 좋은 와인은 아껴뒀다가 천천히 마시고 싶은데도 장기 보관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마신 경우가 많았는데, 셀러가 있으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마실 수 있는 적기가 되지 않은 와인들은 셀러에 몇 년 묵혔다가 마시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바롤로 품종은 7∼10년쯤 지나야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선물 받은 2013년 빈티지의 바롤로를 셀러에 넣어뒀고 아껴두는 중이다. 가능하다면 2023년에 마실 계획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셀러에 빈칸이 보이면 채워놓고 싶어지는 심리 말이다. 할인 행사 때마다 와인을 사재기 시작했고, 결국 화이트 와인은 셀러에서 쫓겨나 다시 냉장고로 들어가게 됐다. 언젠가는 더 큰 셀러를 사고 말리라는 소망을 갖게 됐다. 셀러의 ‘부작용’(?)이다.

꼭 셀러를 살 필요는 없다. 여름엔 냉장고에 보관하고, 미리 꺼내서 적정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 좋은 와인을 만나고 싶다면 정성과 기다림도 필요한 법이니까.토요판팀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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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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