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5 09:30
수정 : 2019.06.15 09:35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7. 리니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의 누군가에게 이끌려 피시방에 갔다. ‘리니지’라는 게임이 있는데 엄청 재미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계정을 만들고 기다림 끝에 접속했다.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마을 어딘가에서 허수아비를 때리면서 레벨을 올려야 했다. 이게 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리니지와 나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리니지가 내 인생에 다시 등장한 것은 개인정보가 헐값에 팔려나가고 리니지의 계정들이 죄다 해킹당했다는 뉴스가 돌던 시절이었다. 만들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계정에 접속해보니 과연 만들지도 않은 캐릭터가 떡하니 있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내 계정을 없애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두 번째 인연도 끝이 났다.
오랜 세월이 지나 리니지2가 ‘리니지2: 레볼루션’이라는 제목의 모바일게임으로 등장했다. 아직도 리니지란 말인가. 하지만 호기심도 생겼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놨을까. 다운을 받아 접속해봤다. 중학교 2학년 때 봤던 것보다 10배는 더 화려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2 시절 모니터의 수십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스마트폰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경탄이 느껴졌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하니 다른 방향에서 엄청난 격세지감이 몰려왔다. 내 기억에 리니지를 비롯한 온라인게임들이 가장 골머리를 썩었던 문제는 이른바 ‘오토’ 혹은 ‘매크로’였다. 직접 캐릭터를 조작하지 않고 불법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동으로 사냥을 하는 일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중 상당수는 피시를 여러 대 두고 오토를 돌려서 얻는 재화를 되파는 이른바 ‘공장’의 계정이었다. 당시 게임 관리자인 지엠(GM)과 오토 업자들 간의 쫓고 쫓기는 경쟁은 리니지를 안 하는 이들에게도 화제였다. 사냥을 하고, 체력이 없으면 물약을 마시고, 물약이 없으면 마을로 돌아가 물약을 구매하고, 오토인지 확인하려고 말을 거는 지엠에게 대답까지 하는 등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판 리니지2는 이미 모든 것이 자동이었다. 캐릭터는 내가 시키지 않아도 퀘스트를 받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을로 돌아가 보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 나는 허수아비를 때리다 지겨워졌지만, 이제는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었다. 시작하자마자 권태감에 휩싸인 나는 다시 게임을 삭제했다.
그리고 얼마 뒤 1편을 기반으로 만든 ‘리니지엠’이 출시되었다. 리니지엠이 출시된 뒤로 모바일게임 매출 순위의 1위는 계속해서 이 게임의 차지다. 유튜브에서는 한 번에 수천만원을 확률형 아이템에 쏟아붓는 리니지엠 영상들을 흔히 찾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을 잘하려면 좋은 아이템이 필요하고, 좋은 아이템을 얻는 길에는 밑도 끝도 없는 확률의 계단들이 존재하며, 그 운에 도전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릭터를 육성하고 아이템을 얻기 위한 사냥도 녹록지 않다. 일명 ‘라인’이라고 불리는 게임 내의 결사체들이 대립하며 자신들의 허가 없이 사냥터에 들어온 유저들을 내쫓고 있다. 아이템 거래를 둘러싼 사기극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 게임이지만, 나는 종종 이런 종류의 것들을 게임이라 부르는 것이 온당한지를 고민하게 된다. 게임산업이 더 많은 경험과 이야기 대신에 다양한 판본의 ‘바다이야기’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학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