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2 09:07
수정 : 2019.05.12 09:10
[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6. 페스티벌에서도 와인과 함께
“조용히 다가온 푸른 밤 하늘/이순간 감사해 내 옆에 너를/노을이 물든 너를.”
와인을 마셨던 수많은 날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고르라면 바람이 살랑대던 푸른 밤, 서울숲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가수 장필순의 ‘애월낙조’를 들으며 와인을 마셨던 그때다. 2017년 9월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에서 득템한 추억 한자락이다. 음악에 취했거나, 와인에 취했거나,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5월, 바야흐로 뮤직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매주 주말, 올림픽공원, 난지한강공원 등에서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런 페스티벌이야말로 와인을 마시기 최적의 장소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과정은 조금 수고스럽고 찌질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에 음식을 가져오는 것을 허용해준다. 음료 역시 텀블러에 담아갈 수 있다. 일단 텀블러를 여러 개 준비한다. 와인 한병 당 텀블러 두 개면 충분하다. 음식은 와인과 잘 어울리면서 식어도 괜찮은 것들 위주로 준비한다. 행사는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만두, 샌드위치, 순대 같은 게 좋다. 또한 치즈나 하몽, 육포 등도 들고 가기에 간편하면서도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
와인은 텀블러에 담아가면 된다지만 와인잔은 어떻게 할까. 텀블러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그래서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와인잔을 넣을 수 있도록 칸막이가 돼 있는 와인 가방(글라스 캐링백)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는 다이소나 마트에서 저렴한 가격이라 깨져도 아깝지 않은 유리잔이나 플라스틱잔을 사서 가져가도 좋다.
낮은 온도에서 마셔야 하는 화이트 와인은 어떻게 가져가냐고? 나는 평소 냉동식품을 택배로 받을 때 동봉된 아이스팩을 버리지 않고 얼려놓는다. 그리곤 보냉 가방에 화이트 와인 텀블러를 넣고 아이스팩으로 감싸준다. 이렇게 하면 한낮의 뜨거운 햇빛 속에서도 시원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물론 푸드트럭에서 음식도 팔고 술도 판다. 하지만 푸드트럭의 줄이 엄청나게 길어 음식을 한번 사고 자리로 돌아오면 노래 몇 곡이 이미 끝나버린다. 게다가 가격도 비싼 편이다. 나는 2016년 5월에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에서도, 2017년 9월에 열린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지난해 10월에 열린 ‘그랜드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에서도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기 위해 이런 수고스러움을 감수했다.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서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오고 술을 사오는 동안 나와 친구는 여유롭게 노래를 들으며 와인을 음미할 수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라이브 공연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다가 졸리면 자고, 다시 일어나서 와인을 마시고, 흥이 나면 박수도 치고 춤을 추다가, 또 다시 눕는 것. 우리는 하루 종일 이 과정을 반복했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셔서인지, 와인을 마시면서 음악을 들어서인지 음악은 음악대로, 와인은 와인대로 눈부시게 빛났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5월, 그 어떤 고급 와인바보다 좋은 음악과 와인이 있는 나만의 페스티벌을 준비해보자.
토요판팀 기자 godjimi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