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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1 18:25 수정 : 2017.11.01 21:40

[짬] 세계예술마을 기행서 쓴 천우연 문화기획자

천우연씨는 네자매 중 둘째이다. 딸들 모두 17살만 되면 부모 품을 떠나 타지로 향했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것 같다”는 천씨는 지난 추석에 아빠를 설득해 귀향 때 자신이 집을 짓고 살 만한 공간을 둘러봤단다. 아빠는 딸이 직장을 그만뒀을 때나 딸의 책을 건네받았을 때나 늘 ‘머리 아퍼불고마잉’이라고 했을 뿐이다. 딸이 뭘 하든 무언의 지지를 해주는 아빠가 너무 고맙단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천우연(34)씨는 대학을 나온 뒤 10년 동안 문화기획자로 살았다. 그리고 2015년 회사에 사표를 내고 1년4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했다. 동경했던 스코틀랜드와 덴마크, 미국, 멕시코 ‘예술마을’을 찾아 각각 석달쯤 머물렀다. 숙식은 예술마을 주민이나 기획자 집에서 해결했다. 주민들과 함께 도자기를 굽고 축제를 꾸미고 동화책도 만들었다. 이 체험은 한 권의 책(<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남해의봄날 펴냄)이 됐다. 천씨를 3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미 미네소타 지역의 인권 축제인 메이데이 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한 천우연씨.

“1년에 많을 때는 제안서를 100개쯤 썼어요.” 여행 전 그는 문화기획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자주 발견했다. 다니던 회사는 주로 서울시 공공예술 축제를 수주해 운영했다. 폼나게 기획서를 써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뜻대로 축제를 꾸리기 어려웠다. “시나 예술감독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니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일이 즐겁지 않았죠.”

10년 동안 모은 3천만원으로 대학원이나 가자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그 뒤 일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학력 세탁’ 말고 ‘진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지인의 권유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림을 직접 그려 넣은 엽서 모양의 자기소개 리플릿(전단)을 영문과 국문으로 만들었다. 이 전단을 기획자 시절에 자료만 보고 정말 가보고 싶었던 세계 예술마을 담당자들에게 보냈다. “박원순 시장이 마을 축제를 강조했어요. 그때 입찰 때문에 해외 사례 조사를 많이 했어요. 제 마음을 심하게 요동치게 한 축제들이 있었죠.”

메이데이 축제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인형을 만들며 축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스코틀랜드의 생태예술마을인 ‘모니아이브 페스티벌 빌리지’와 덴마크 예술교육기관인 ‘보른홀름 예술시민학교’, 미국의 인권축제인 메이데이 축제를 주관하는 ‘야수의 심장 인형극단’, 멕시코 전통공예마을 틸카헤테까지 모두 4곳이 최종 행선지로 정해졌다.

여행 경비는 1500만원쯤 썼다. “전생에 내가 나라를 구했나”라는 그의 말처럼, 예술마을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조그만 소녀’를 서로 도우려 했다.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줬고, 그가 만나길 원하는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제가 리플릿에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썼거든요. 그들의 활동을 한국에 전하는 중요한 구실을 제가 할 것으로 본 것 같아요.”

문화기획자 10년 뒤 사표내고
스코틀랜드 등 세계 예술마을
16개월 동안 머물며 생생 체험

“준비 과정 아름다운 축제 감동
여행 뒤엔 즐거운 일 하잔 생각
5년 뒤 풍경 아름다운 해남으로”

메이데이 축제 모습.

축제를 사랑하고 낯선 이와 쉽게 사귀는 그의 천품도 이방인들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보른홀름 예술시민학교에서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꾸민 ‘빛의 밤’ 축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온몸을 다해 즐겁게 했죠.” 밤을 새우며 준비한 탓에 정작 축제 날에 깜박 잠이 들어 수강생들이 그를 찾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획자 시절 꾸민 축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는 질문에 “생각나질 않네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라고 답했던 그였다.

야수의 심장 인형극단 체험도 잊을 수 없단다. “과정이 아름다웠어요. 축제가 모두 다섯가지 사회이슈를 다룹니다. 축제를 준비하며 사람들이 모여 인형을 만들죠. 이 과정에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합니다.” 그가 작가로 참여한 그룹은 초록색 대형주민센터 조형물을 만들었다. 감옥 지을 돈으로 주민센터를 짓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이 축제를 42년 동안 이끌고 있는 기획자 샌디의 집에 머물며 축제 전 과정을 지켜봤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축제 준비 워크숍을 보면서 제가 한국에서 축제 제안서에 수없이 써넣었던 진정성, 진심이란 단어의 본모습을 보았죠.”

그는 지난 5월부터 서울시 공공한옥을 위탁운영하는 북촌문화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여행기획을 합니다. 북촌 주민들이 직접 여행 해설자로 나서 관광객에게 지역의 역사나 지리, 삶의 모습을 깊이있게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멕시코 틸카헤테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나무인형을 만들고 있는 천우연씨.

여행은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문화기획자로서 외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고 내가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죠.” 여행은 또 그가 자연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그래서 고향 해남으로 내려가겠다는 막연한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줬다. “집이 해남 땅끝마을에 있어요. 해 질 때 노을과 바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요. 제가 가장 행복한 곳이죠. 5년 안에 내려갈 겁니다.” 지난 여행에서 친구가 된 세계의 예술가들을 불러 땅끝마을에 ‘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공동작업실’을 세우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천우연씨는 스코틀랜드 생태예술마을 ‘모니아이브 페스티벌 빌리지’에선 지역주민인 노부부(사진)의 집에서 머물렀다.

고교생 때부터 문화기획자가 꿈이었다고 했다. “고교 때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학교는 입시에만 열을 올렸죠.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때 ‘배트맨 노트’에 하고 싶은 축제를 써나갔죠. 고교생 헤어드레서 페스티벌 같은 것도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런 행사가 열리더라고요.” 그의 꿈에 직접 영향을 준 건 화가 장욱진의 그림이었다. “그림을 보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냄새나 가족을 떠올렸죠. 제가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수능을 보기 전날 아버지는 해남에서 딸이 머물고 있는 목포의 모텔로 찾아왔다. 장미꽃 40송이를 딸에게 건네며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단다. “15년쯤 서울살이를 했어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라고 생각한 데는 이런 엄마·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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