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18 18:16
수정 : 2017.04.19 00:45
30년 신춘문예 도전 번번이 낙선
세 아이 낳고 결혼 10년 만에 이혼
노안 온 뒤 소설가 꿈 접고 지리산 귀촌
‘실패 찬양’ 아이슬란드 여행 꿈꿔
고모가 들어준 보험 헐어 재작년 실행
“여행 뒤 내 인생 실패란 생각 사라져”
아이슬란드 여행기 펴낸 강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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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경 작가. 아이슬란드에서 일주일이면 바닥이 날 돈으로 71일 ‘깡 여행’을 했다. 그가 쓴 책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에서 50대 한국 여성 배낭여행가의 ‘미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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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은경(54)씨는 재작년 6월부터 8월까지 71일 동안 아이슬란드 여행을 했다. 여느 여행과는 크게 달랐다. 히치하이킹과 캠핑만으로 용암이 분출하는 화산재의 땅을 누볐다. 죽을 고비를 두 차례나 넘겼다. 그 뒤 강씨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더이상 ‘인생 패배자’가 아니었다. 막노동도 즐겁다고 했다. 최근 여행기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어떤책)을 펴낸 강 작가를 지난 1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198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30년 가까이 매년 3편 정도 소설을 써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매번 낙선했다. “관념적 소설을 썼어요. 제가 최수철 소설가를 좋아하거든요.” 그의 대학 은사인 최창학 작가는 제자에게 “그렇게 오래 습작에 매달리는 이는 너밖에 없다”고 말했단다.
쉰살을 앞둔 6년 전 노안이 오면서 오랜 꿈을 접었다. “몸이 더이상 20대나 30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소설 쓸) 의지력이 사라졌어요.” 그는 96년부터 홀로 살고 있다. 23살 때 재미동포와 결혼해 10년 만에 헤어졌다. 그가 낳은 세 아이는 모두 미국에서 친조부모 손에 자랐다. 한국말이 서툴러 가끔 만나는 엄마와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엄마는 만 스무살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아들과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했다. 돈이 없어 세 아이 대학 졸업식에도 못 갔다.
그가 한국에서 매달린 유일한 일은 소설 쓰기였다. 서울의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낮엔 육체노동을, 밤엔 소설을 썼다. 소설 쓰는 데 방해가 될까봐 알바 자리도 정신을 쓰는 일은 피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열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붓을 꺾은 뒤 자신이야말로 완벽한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그때 아이슬란드를 만났다. 에릭 와이너는 <행복의 지도>란 책에서 아이슬란드는 패배를 찬양하는 나라라고 썼다.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라니, 너무 이상하게 들렸어요.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풍경도 멋지더군요.” 아이슬란드에 가리라 맘먹었다. 그는 2011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에 집을 샀다. 서울 집 전세금 5천만원으로 150평 농가 소유주가 됐다. 주변 농장이나 식당에서 일해 한 달 30만원 정도 생활비를 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가가 한국의 2배쯤 되는 북유럽 국가의 여행 경비 조달은 다른 문제였다. 결단을 내렸다. 목사인 고모가 대책 없는 조카를 위해 들어놓은 만기환급형 정기보험 470만원을 깼다.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500쪽 가까운 그의 책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여행 열정’으로 들끓는다. ‘보는 행위’에 대한 욕망, 그게 뭔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는 캠핑촌에서 남들이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강풍이 몰아치는 텐트 안에서 뜨거운 물이 담긴 페트병을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뷰포인트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놓치고 길을 잃어 두차례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히치하이킹 횟수만 60여차례다. 아이슬란드인 운전자들은 히치하이커를 태워주면서 꼭 내려서 짐을 차에 옮겨준단다. 활화산만 30개가 넘고, 지난 100년 동안 화산 폭발이 46차례나 되는 이 나라가 왜 ‘가장 안전한 나라’인지 실감한다. 여행 68일째 되던 날 호숫가 벤치에서 만난 할머니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쓰고 싶은 글 쓰면서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당신에게 사는 게 뭐죠.” 그는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했다.
“여행 뒤 내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실패나 성공 그런 잣대로 내 인생을 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는 성공으로 이어진 실패만 찬양하죠. 아이슬란드인들은 결론까지 실패로 이어져야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나라 사람들은 지금 뭘 하는지에 의미를 두더군요.” 그런 태도의 뿌리는 뭘까? “자연이 아닐까요. 계속 변하는 자연 앞에서 당장 오늘 즐거움을 찾자는 현실주의 태도를 갖지 않았을까요. 성공은 미래의 일이니까요. 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는 것도 중요하죠. 실패해도 먹고살기 힘들지 않으니까요.”
책이 나온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출판사 32곳에서 퇴짜를 놓았다. 여행작가 이지상씨 추천으로 간신히 출판사를 찾았다. 지난겨울에도 석달 동안 타이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배낭여행을 했다. 막노동을 하고 모은 200만원을 경비로 썼다. “지리산 집이 겨울엔 보일러가 없어 너무 추워요. 앞으로 겨울 3개월은 배낭여행을 할 것 같아요. 제가 살면서 가장 소홀히 한 게 몸입니다. 다음엔 몸과 여행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가 꿈은? “쓰고 싶은 마음이 불쑥 나기도 해요. 하지만 쓰더라도 투고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책이 나온 뒤 80대인 아버지 어머니가 ‘딸이 쓴 책 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는데 원을 풀었다’며 너무 기뻐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엔 ‘지리산의 자유여행자 강누나의 깡스런 여행 이야기’란 설명을 단 팟캐스트 ‘강누나의 깡여행’도 열었다. 회당 2천명 정도가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왜 여행일까? “재밌잖아요. 아이슬란드 대자연 속에서 홀로 있을 때 살아 있음의 전율을 느꼈어요. 눈물이 났죠. 아이슬란드 곳곳에서 그런 감동을 받았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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