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26 20:07
수정 : 2014.02.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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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 금 아래 흰 부분이 얼음 두께를 짐작케 하는 균열 자국. 멀리 보이는 자동차가 우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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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바이칼호와 올혼섬 여행
빙판으로 변한 겨울 바이칼호와 비현실적 얼음세계 펼쳐진 올혼섬 탐방기
바이칼 위에 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지 나흘 만인 2월12일, 말 그대로 우리는 바이칼 호수 위에 섰다.
선착장에는 여름에 사람들을 태우고 갔을 배가 얼음에 갇혀 드러누워 있었다. 탁 트인 배 뒤쪽은 물이 아니라 얼음세계였다. 36명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처음엔 시퍼런 물 위에 떠 있는 얼음들이 믿을 만한지 조심조심 이리저리 재 보다가 금방 더 깊은 쪽으로 주춤주춤 영역을 넓혀갔다. 그래도 불안했다. 2500만년 전에 형성돼 지금도 지진이 잦은 바이칼은 여전히 생성 중인, 남북 길이 636㎞, 긴 폭은 약 80㎞, 좁은 곳이 약 25㎞인 세계 최대급 크기에다 가장 깊은 담수호다. 최대 수심 약 1700m, 평균수심 576~854m. 게다가 바이칼은 세계 최고의 청정도를 자랑하는 호수이기도 해서 얼음 밑은 현기증이 일 만큼 푸르고 투명했다. 아무리 자동차가 다닌다지만 오금이 저릴밖에.
저만치 교통표지판이 보였다. ‘차간 거리 200m’, ‘시속 30㎞ 속도제한’, ‘상하행 한길 사용 금지’. 얼음이 언 뒤에 구멍을 파고 심어놓은 것들이다. 표지판을 따라 자동차 바퀴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50대의 슬라브족 주코바 아저씨가 리드하는 독특한 형태의 러시아형 4륜구동 승합차 ‘우아즈’(UAZ) 4대가 일행을 분승시켜 달리기 시작했다. 평균 시속 40~60㎞의 과속(!). 아래는 매끈한 얼음 아래 시퍼런 물이 삼킬 듯 노려보고 있었다. 1㎞쯤 달려갔을까. 얼음이 꺼지면 어디 도와달라 외쳐볼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에 주코바 아저씨가 차를 세우자 모든 차들이 그 주변에 섰다. 어,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 있어도 되는 거야? 꺼지면 어떡하려고? 그 순간은 사람들이 추위 따위는 잊어버렸다. 얼음은 그냥 매끈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 금이 쩍쩍 가서 다시 얼고 그 금 간 자리 아래쪽이 더 얼어내려간 자국이 그대로 보였다. 정말 1m는 넘겠다. 자동차 서너대가 한자리에 모이고 30명이 넘는 인간들이 내려 이리저리 발을 굴려보고 사진을 찍는다 부산을 떨어도 얼음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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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빙벽이 둘러친 바이칼 호의 바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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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는 20여개나 되는 바이칼호 섬들 중에 길이 72㎞(크기는 제주도의 절반 정도)로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올혼(알혼) 섬의 후지르 마을 니키타 민박촌에 여장을 푸는 것으로 여정을 마쳤다. 도중에 젊은 운전수 바실리 등이 이리 와 보라며, 자신있게 보여준 붉은 이끼의 바위섬 뒤쪽은 거대한 고드름들이 엉겨붙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올혼 섬으로 올라간 자동차들은 나무가 없어 황량해 뵈는 섬 비포장길을 30여분 달렸다. 여름엔 저곳들이 아늑한 풀밭과 꽃밭으로 변하겠지. 여장을 풀자마자 후지르 마을 언덕 너머에 있는 세계 샤머니즘의 성지 ‘부르한 바위’로 갔다. 살을 에듯 추웠다. 그 지역 부랴트인들 외모가 우리와 닮았고, 우리의 옛 성황당 비슷한 분위기와 유사한 천손신화, ‘불함문화’론을 떠올리게 하는 부르한이란 명칭 때문인지 그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원지라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근거가 있는 얘길까? 단정할 순 없지만,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한반도인들만이 아니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까지 광범한 지역을 삶터로 삼아온 몽골족 전체가 돼야 하는 게 아닐까. 부랴트인들과 닮았다는 일부 우리 습속이 그 땅에 살던 선조들이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갖고 온 것인지, 13~14세기에 그곳과 인근 몽골 초원을 발원지로 해서 유라시아를 제패한 칭기즈칸의 원 제국이 남긴 습속인지, 아니면 인종과는 무관한 샤머니즘 보편문화인지. 어쨌든 어딘지 신비와 영성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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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숙박한 바이칼 올혼 섬 후지르 마을의 니키타 민박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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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로 지은 니키타 민박촌은 예상보다 편안했고 음식도 괜찮았다. 거기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온 한국인 남녀 학생 4명을 만났다.
다음날은 여름엔 육로로 달려야 하는 올혼 섬 북쪽 끝 호보이(하보이) 곶까지 수십킬로의 여정을 줄곧 얼음 위로 달려갔다. 후지르는 올혼 섬 왼쪽 중간지점에 있어서, 그쪽 호수는 섬 오른쪽 대안이 보이지 않는 쪽보다는 상대적으로 좁지만 그래도 바다처럼 넓었다. 밤사이 살포시 내린 눈으로 전날처럼 매끈한 얼음판을 볼 순 없었으나 대신 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장대한 규모의 얼음세계를 온종일 돌아다녔다. 삼형제봉의 기암과 붉은 이끼, 호보이 곶 절벽의 얼어붙은 기암들이 멀리 흰 눈을 인 산들에 에워싸인 바이칼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간 에스에프(SF) 속의 어느 먼 행성의 풍경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에는 불가능한 부르한 바위 뒤쪽 풍경도 호수 위를 걸어다니며 살필 수 있었다.
호보이 곶 일대는 집채만한 얼음조각들이 말 그대로 벌떡 일어서서 호수를 뒤덮고 있었다. 그 지점부터는 자동차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호수가 얼어붙는 과정에서 깨어진 얼음 조각들이 바람이나 큰 얼음덩이에 밀려 다른 얼음덩이와 부딪치면서 깨어지고 일어서면서 그대로 얼어붙어버린 모양이었다. 붉은 이끼의 기암절벽들 아래 장관을 이룬 거대한 빙벽들도 그 시기에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품이었다.
저녁에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 체험도 했다. 멋모르고 달아오른 돌들 위에 무모하게도 많은 물을 끼얹어 확 퍼지는 뜨거운 열기에 혼비백산하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자작나무 가지 두들기며 잘 놀았다. 올혼 섬을 떠날 때 온난화 때문에 얼음이 잘 얼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바이칼 위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을지 현지 주민들이 걱정한다는 얘길 들었다. 바이칼조차 무사하지 못할까?
바이칼호/글·사진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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