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백촌 막국수.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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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신이 무어라 해도 나는 나대로 한다
편협과 억지, 좋은 말로 공감의 휴가 진검승부
직접예약 VS 패키지
공포에 휩싸인 클릭질
자유여행의 은밀한 매력은 공포다. 당신은 혈혈단신 공항에 표 사러 가는 아이다. ‘모르는’ 곳에서 여행자는 약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은 존재다. 자유롭고 싶어 직접 예약하고 간다고?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당신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안 먹고 싶은 음식을 안 먹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잘 것이다… 꿈 깨라. 헤매다 맛없는 점심을 먹을 확률이 더 크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그런 공포가 분노의 클릭질을 유발한다. 공포에 휩싸인 어린이, 싸고 좋은 숙소와 맛있고 저렴한 음식을 찾아 가이드북보다 100배는 드넓은 인터넷 ‘후기’의 바다를 헤맨다. 국내외 예약 사이트 안에서 길을 잃는다. 이만큼 시간을 들였으니 여행사 니네보다 기필코 더 싸게 예약하고야 말리라, 오기가 치민다. 외국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뷔페 쿠폰을 살 정도로 갔다면, 여행 가 있는 시간보다 여행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면, 당신은 이미 포로다. 떠나기 전에 지쳤다. 끝으로 모르면 고급 정보, 알면 저질 정보 공개. 일단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com)를 뒤져라. 수십만 건의 숙소 후기가 순위별로 반긴다. 찜하면 가격비교 사이트(hotelscombined.com 등)의 체크를 거쳐, 할인코드 수집에 나서라. 그러나 해보면 안다. 이 모든 것을 ‘무’로 돌릴 프로모션을 여행사는 자주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눈알이 빨갛다. 그것은 분노? 밤샘?
신윤동욱 기자
자본주의 여행의 ‘집단지성’
이 글은 실화에 바탕한다. 2005년 여름 성수기, 친구 한 명은 남자친구와, 회사 동료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친구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박을 따로 예약했다. 회사 동료는 패키지로 갔다. 패키지에는 차도 포함됐다. 친구는 버스로 다녔다. 같은 날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상식을 깨부수는 이야기를 숫자로 들려주었으니, 3인 가족이 2인 연인보다 제반 비용이 적게 들었다는 것.
휴가를 위해 저가항공 사이트에 들어가본다. ‘3인이 모이면 2만원 할인, 더 많이 모이면 더 내려간다.’ 페이스북에 사람들은 글을 적는다. ‘저희 2인 출발인데, 그때 출발하시는 1인 안 계신가요?’ 이것이 자본주의 여행의 ‘집단지성’이다. ‘1박2일 단돈 얼마’ 놀라운 패키지의 내용 아래 ‘최소 2인 출발’이 적혀 있다. 노란 깃발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니터 앞에서 여행자 연대를 꾸리고 있다. ‘예약’만 누르면 친절하게 전화가 오고 나는 뭘 먹을까만 생각하면 된다. 더 싼 패키지를 확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방황하지 않기’는 필요하다. 저가항공 사이트는 ‘모의 여행’의 대가 S기자가 알려주신 바다. 패키지는 동분서주한 여행사 직원의 분노의 클릭질 결과다. 그런 방대한 노력이 한 명만 위해서라면 안타깝지 않은가.
구둘래 기자
먹보 여행, 때깔도 좋다 국수만 후루룩 지도를 펼치고 눈으로 고속도로를 탄다.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속초~고성을 찍고 오는 1박2일 코스다. 동해바다 가는 길이라고 오해들 마라. 바닷가니 물에 들어가 발 담그고 사진 좀 찍겠으나, 내 여행 준비물은 비키니가 아니다. 가방엔 카메라, 맛집 수첩, 만약을 대비한 소화제가 들었다. 국수라면 세끼를 내리 먹어도 좋은 국수 마니아인 내 여름휴가는 강원도 국수 여행이다. 춘천의 메밀막국수, 속초의 회냉면, 고성의 동치미막국수를 먹고 올 요량이다. 시간이 된다면(뱃속은 문제없다) 돌아오는 길에 경기도 포천의 김치말이국수, 가평의 잣국수까지 후루룩. 메밀의 고장 강원도엔 지역마다 기후 특색, 지리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국수 종류가 다양하다. 식도락 여행의 재미는 늘 새롭다는 것이다. 여행지의 유명 미술관·유적지 등은 한 번 보면 다시 볼 필요성을 못 느끼나, 음식은 테마에 따라 지역을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부산의 향토음식, 제주도 진미여행 등 주제를 정해 떠나면 음식의 맛과 유래를 통해 지역의 특징을 쉽게 배울 수 있다. 여행지에서 그저 소문난 음식을 먹고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미각의 세계가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선물한다. 김미영 기자 한겨레 편집부 먹지 않으면, 가본 게 아니다 먹지 않으면, 가본 게 아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5월 터키 이스탄불항에서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물 위에서 흔들리는 낡은 어선을 개조한 레스토랑에서 고등어 케밥을 먹지 않았다거나, 한국 원양어선에서 성추행을 겪은 인도네시아 선원을 만나러 지난 5월 찾아간 자카르타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3시30분 인도네시아 서민들과 섞여 팔딱거리는 생선과 문어를 골라 요리사에게 맡기고 몇 분 뒤 나온 그 짭짤한 생선구이와 문어볶음을 인도네시아 현지 맥주인 ‘빈탕’과 함께 맛보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혹은 2010년 7월 말 일본 규슈의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던 여름휴가 여행 마지막 날 나가사키에서 자며 ‘나가사키짬뽕’을 먹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거나,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맥아공장을 취재하러 전북 전주를 찾았던 2008년의 어느 늦여름 오후 ‘왱이집’의 콩나물국밥을 먹지 않고 그냥 서울로 돌아왔다고 가정해보라. 어렵게 생각할 거 없고, 길게 말할 거 없다. 그 땅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여행한 게 아니다. 물론, 이스탄불에서 맛본 현지 증류주 ‘라키’를 한잔 들이켜자마자 ‘치약 섞은 소주’ 맛에 화들짝 놀라 기함한 실패의 경험도 비일비재하다. 그럼 어떤가. 그 실패조차 3매 원고 글감으로 써먹을 수 있는걸.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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