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정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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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신이 무어라 해도 나는 나대로 한다
편협과 억지, 좋은 말로 공감의 휴가 진검승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는 멍청하다’고 심한 소리를 합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 중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죠. ‘고양이는 자기밖에 모른다’고 공격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도 높은 산이 있고 넓은 바다가 있습니다. 그 차이뿐일까요. 누구는 캐리어만을 고집하고 누구는 그런 건 ‘개나 주라’고 합니다(그럼 고양이 편?). 북적이는 성수기에 휴가를 가야 휴가 갔다 온 듯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과정이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1년 전부터 계획을 짜는 사람이 있고, 전날까지도 비행기표 확보에 유유자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계획인간’이 보기에 답답하고, ‘무계획인간’이 보기에 아등바등입니다. ‘여행 대격돌’에서 개와 고양이가 싸움을 벌였습니다. 압니다. 사실은 세상에 중간이 훨씬 많습니다. 편을 나눠서 ‘억지’를 부려보았습니다. 여행 갈 땐 ‘억지’는 내려놓고 가세요. _편집자
앞서가기 VS 따라가기
꺼져, 이건 내 여행이야
여행지에서 현지인 친구를 만난다. 물론 반갑다.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멋진 한 끼 베풀어주고, 숨겨진 보물을 알려주고… 좋다. 거기까지다. 만약 그 친구가 새벽부터 설레발을 치며 하루 종일 나를 안내하겠다며 가이드 모드로 나선다면, 내 입에선 이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꺼져. 이건 내 여행이야.”
패키지냐 독립여행이냐, 이런 물음이 아니다. 아무리 독립이라도 그룹으로 움직인다면, 그 여행의 설계는 내가 한다. 독재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체력, 현지의 디테일한 정보, 이동 경로의 여러 변수…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획을 짠다. 일행에게 복수의 안을 브리핑하고 결제를 받은 뒤 실행한다.
완벽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것도 아니다. 여행이란 돌발 변수와 사고의 연속이다. 그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새로운 판을 짜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 나는 거기에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탄 배의 키를 자신이 움직이겠다고 나서면, 그 긴장이 확 무너져버린다. 그것은 내게 절반의 여행일 뿐이다.
이명석 문화평론가
나는야 ‘젖은 낙엽 여행가’
지난 한 달간 미국 대륙을 돌며 꽉찬 두 권의 여행노트를 썼다. 온갖 곳의 자료 스크랩과 풍경 스케치까지 곁들인 제법 그럴듯한 노트다. 돌아온 뒤, 1년6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하고 온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림 그린다는 사람이 여행노트가 달랑 한 권 반이다. 여행 루트를 짜고 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찾는 온갖 실무를 하다 보니 쓰거나 그릴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 그런데 난 어떻게 쓸 수 있었느냐고? 당연히, 실무를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나는 공식 ‘젖은 낙엽 여행가’다. 내 여행 방법은 여행 동료에게 젖은 낙엽처럼 딱 달라붙어 다니는 것. 동료가 계획을 짜고 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선정하는 동안 나는 산책을 하고 풍경을 즐기고 노트를 쓴다. ‘신선놀음’이다. 의사소통하느라 쩔쩔맬 필요도 없다. 계획이 어긋나서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감탄하고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젖은 낙엽 여행가에게도 소양이 필요하다. 취향이 같은 여행 동료를 찾아낼 것. 원하는 바가 확실할 것. 살짝 비굴할 것. 그 모든 조건만 충족되면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요구를 관철하는 적당한 ‘밀땅’이 필요하다는 것. 그게 없으면 깃발 졸졸 따라다니는 무미건조한 패키지여행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박사 자유기고가
계획 VS 무계획 숙소에서 멍 때린다’도 계획하에 계획을 짜는 이유? 소심한 A형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계획을 짜면 휴가 내내 편하다. 계획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어떻게 얻은 휴가인데 허투루 보낸단 말인가. 계획을 짜는 것 자체도 즐겁다. 뭐할까 어디 갈까 궁리하다 보면, 벌써 휴가를 떠난 기분이다. 계획적인 휴가는 왠지 ‘휴’하는 것 같지 않다고? 내게 ‘허투루’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그래서 ‘숙소에서 멍 때린다’도 계획이 된다. 첫날 먼 거리 이동에 피곤한 점을 고려해 둘쨋날은 ‘오전 휴식, 오후 등산’ 식으로 계획을 짠다. 무계획한 이들, 즉 네가 다 알아서 하라든가, 되는 대로 하면 되지, 이러면서 남이 짜놓은 계획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은 휴가지에서 반드시 불만을 늘어놓는다. 사실 내 계획은 허술한 편이다. 하루 한두 가지 프로그램을 정하는 정도다. ‘우천시 일정’을 따로 마련해둘 만큼만 치밀하다. 시간대별 일정은 물론, 세끼 메뉴까지 엑셀파일로 만들어 실천하고야 마는 친오빠(별명이 ‘이 가이드’)에 견주면 비계획적이다. 열심히 계획을 짜고 갔는데 강원도의 한 계곡 입구에서 망연자실한 적도 있다. 전해 여름 태풍에 박살나 복구공사가 그때까지 진행 중이었다. 인생이 뭐 늘 계획대로 되던가. 이지은 기자 여행지의 무궁무진함을 믿으라 무계획이 상팔자다. 교통편과 숙박만 확실하다면 나머지는 여행지가 알아서 코스를 펼쳐주리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계획에 몰두해 미리 보고 듣는 게 많아지면 감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여기가 유명한 거기라며’ ‘여기가 맛있는 집이래’ 하며 확인하는 절차밖에 더 되겠는가. 게으른 여행자에겐 얻어 걸리는 것도 많다. 무작정 차를 타고 도착한 경주에서는 싸고 맛있는 한정식집을 ‘득템’했고, 여행객이 사라진 한적한 밤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뒤에서는 뜻밖의 불꽃놀이가 오로지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펑펑 터졌다. 딱 한 번 계획을 세우고 출발한 적이 있다. 친구들과 떠났던 인도 배낭여행. 그러나 우리는 여행 닷새 만에 계획을 산산조각냈다. 대신, 일정에 없던 아름다운 소도시에서 보석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여행자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때 그들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했다. 신혼여행도 비행기, 잘 곳 딱 두 가지만 정하고 출발했는데 웬 계획? 변수에 대비해 계획을 세운다지만 계획은 그 변수에 깨지라고 있는 거다. 어차피 깨질 것 바쁜 와중에 뭐하러?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여행지의 무궁무진함을 믿고 그냥 출발해보시라. 신소윤 기자
무대책 해외 캠핑 VS 호텔 호텔 없다고 길바닥에서 자랴 두 달 전, 2주간의 유럽여행 마지막 코스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향해 프랑스 니스발 13만원짜리 이지젯에 올랐다. 4명은 되리라 봤던 일행이 2명으로 줄어든 터라 숙박 예약을 하지 않기 잘했다, 고 착각했다. 중앙역 앞의 관광안내센터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대기표를 받고 상담에 들어가기까지 1시간여. 20만원 이상이 아니고는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없었다. 배낭여행 전문인 후배는 걱정 말라며 앞장서 거리로 나섰다. 캐리어를 끌고 1시간 넘게 걸으며 호텔을 뒤졌으나 빈방은 없었다. 여행의 끝물, 피로감이 들끓기 시작했다. 마침 자전거 대여점이 눈에 띄었다. 짐을 맡기고 1만원에 4시간을 빌렸다. ‘자전거의 도시’란 명성에 어울리게 그 복잡한 시내에서 씽씽 달리는 게 가능했다. 관광을 겸한 호텔 구하기에 마침내 성공했다. 12인 도미토리에 1인당 8만원. 가격도 셌지만 나신에 가까운 금발의 미남·미녀에 둘러싸인 잠자리는 즐겁다기보다 고통에 가까웠다. 다음날 아침, 후배에게 캠핑을 제안했다.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캠핑요?” 지난해 여름,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기억을 들려줬다. “그때도 아무 장비 없었어. 다행히 일행이 캠핑장 예약은 해두었고. 딱 하나 있는 마트에서 콜맨 텐트를 하루 10달러에 대여받아 아주 잘 썼어. 여긴 유럽이니 더 좋을 거야.” 관광안내센터에서 암스테르담 주변의 캠핑장 서너 곳을 추천받은 뒤 중앙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곳을 찾아갔다. 불행히도 텐트도, 침낭도 대여는 없었다. 구매만 가능했다. 텐트를 구입하느니 하루 10만원짜리 4인용 오두막을 빌렸고, 2만5천원짜리 침낭을 샀다. 냄비 하나를 더 사서 커피, 스파게티, 라면, 바비큐를 돌려가며 해먹었다. 여행 피로를 날려준 3일간의 숲 속 캠핑! 이제 다음은 어느 나라에서 캠핑을 해볼까나~. 이성욱 씨네21북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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