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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1 09:53 수정 : 2012.07.21 15:03

윤운식 기자

[특집] 좋아서 오르고, 거기 있기에 빠진다
화합할 수 없는 '산파'와 '바다파'의 화려한 매치가 화끈한 여름을 준비할지니

그 물 다 산이 기른 선물이다

이제 여름을 기다리며 불철주야 몸 만드신 ‘닭가슴살교’ 근육질의 수도자들 바닷가를 점령할 터. 그들의 백사장 런웨이에 들러리가 될 필요 없다. 나는 산으로 간다.

운동이라곤 숨쉬기운동밖에 할 줄 모르나 딱 하나 좋아하는 것이 등산이다. 그럼에도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편이다’라는 조지 핀치의 말을 빌려, 산을 오르지만 나는 ‘비운동권’이라 외친다. 핀치는 1922년 제2차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 때 산소통을 가지고 해발 8326m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다. 에베레스트, 여름날 그 이름만 들어도 서늘하지 않은가! 당시 같은 팀에서 핀치보다 먼저 산소 없이 8천m를 넘어선 이가 조지 맬러리다. 핀치는 등산은 운동경기가 아니니까 삶에 유용한 도구라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산소통도 자신이 직접 고안한 것. 아무튼 이때부터 산소를 쓰느냐 마느냐가 히말라야 등반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결국 산을 오르는 일은 삶의 방식과 별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맬러리는 다음 원정 때 실종돼 전설이 되었는데, 물론 그땐 산소통을 가지고 갔다.

케케묵은 옛이야기 들먹여 “거기 산이 있기 때문에”라는 맬러리의 말로 산을 편들겠다고 시작한 소리가 아니다. 당연히 바다도 늘 그 ‘거기’ 그대로 있잖은가. 더구나 산은 종종 굴착기에 먹혀 사라지기도 하지만 누가 감히 바다를 없애겠는가. 오,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 바다! 그러니 부디 지혜로운 사람(智者)이여, 제발 물 좋은 바다로 가시라. 이렇게 온 국민을 해수욕장으로 보낸 다음, 한적한 산마루에 올라 북적이는 바닷가를 굽어보며 인자(仁者)처럼 웃고 싶다. 인산인해의 피서철, 더위보다 사람부터 피하는 게 상책 아닌가.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바다는 물 흐르는 대로 누구나 가닿을 수 있지만 산은 최소한 준비와 각오가 된 사람만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서늘하고 적막해지는 법. 그래서 그곳에선 징그러운 사람마저 반가울 때가 있다. 한번 물어보라. 여름휴가 산으로 가자 하면, 더운데 왜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가느냐고 볼멘소리부터 나올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 산이 좋다. 적어도 정말 산이 좋은 줄 아는 사람만 무거운 배낭 메고 높이 올라갈 테니.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얼마나 시원하겠느냐고 꾀어도 소용없다. 해수욕장이 종종 해운대탕, 경포대탕 같은 목간통으로 변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 물 모두 산이 골골이 길러서 낮은 곳으로 흘려보낸 선물이다. 그러니 높은 산 깊은 골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이가 어디 바다를 부러워할까. 무엇보다 등산은 몸 안의 연료를 태워 스스로를 뜨겁게 데우는 운동이다. 그렇게 해서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서늘한 산바람에 식혀보았는가. 바닷물에 열기를 식히는 게 에어컨을 트는 단순 처방이라면 산에 올라 서서히 땀을 식히는 건 이열치열로 속을 다스리는 여름철 보양식이다.

그렇다고 바다여, 야속해 마라. 설악산 뒤풀이는 늘 속초 앞바다로 갈 테니. 목이 터져라 부르는 ‘여수 밤바다’도 금오산에 오른 다음 만나리다.

김선미 작가

한겨레 자료사진

제발 자연을 ‘정복’할 사람들은 오지 말기를

도시 사람에게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대체로 바람에 섞인 한 줄기 소금 냄새를 맡으며 시작된다. 바다의 소금기란 시시때때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산에 오르며 흘리는 땀이나 바닷물이나 짜기는 매한가지라고 우긴다면 할 말 없다. 산의 소금기가 여행의 추억을 짜게 절일 동안, 바닷물은 더 먼 바다와 나를 잇는다.

1998년 멕시코를 여행할 때 덴마크에서 온 웬디와 나는 멕시코 중부도시 와하카 근처에서 헤어졌다. 원래는 함께 푸에르토에스콘디도로 가기로 했지만 웬디가 새로 생긴 미국산 남친과 유적의 산에 오르고 싶어진 것이다. 덕분에 나도 이기적인 몸매의 소유자인 웬디와 함께 해변을 거닐어야 한다는 부담을 벗었다. 푸에르토에스콘디도로 가는 길에 시폴리테라는 바닷가로 방향을 틀었다. 멕시코 동쪽 해안에 마지막 남은 누드비치지만 ‘죽음의 바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곳으로 간 이유는, 웬디가 ‘미쳤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남친을 따라간 이유와 대충 비슷할 터다. 혼자 바닷가로 가며 쓸쓸했을까? 교도소가 있는 동네에서 차를 갈아타고 20분 정도 더 갈 때는 그랬을지 모르겠다.

시폴리테 한쪽 구석에는 소수민족 바스크 출신 글로리아의 집이 있다. 영국에서 교사로 일했던 글로리아는 시폴리테에 여행 왔다가 다시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았다. 멕시코인과 결혼해 모래사장 위에 아이를 낳고 산다. 글로리아의 아기가 잠든 요람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글로리아의 집은 바닥도 없이 모래사장 위에 지붕과 기둥만 세운 집이다. 같은 바스크족 친구인 이니고와 랄라도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살다가 그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해먹 위에서 뒹굴고 목욕도 거의 하지 않았다. 삶에 풍경이 있다면, 아침 밀물에서 시작해 저녁 썰물로 끝날 것 같았다.

바다는 히피들의 놀이터다. 아침이면 온 가족이 모여앉아 글로리아의 시어머니가 손수 아들을 위해 구해온 질 좋은 대마초를 한 대씩 피웠다. 여행 안내서에 “밤에 바닷가에 나가지 마라. 개떼들이 사람을 습격한다”고 쓰여 있다고 했더니 모두 코웃음을 쳤다. 밤에 자는데 이니고와 랄라가 문을 두드렸다. “나와봐.” 어디에서 왔을까? 바닷가에서 멕시코 인디언들이 불을 피워놓고 이상한 의식을 지내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밤의 꿈을 꾼다.

시폴리테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었다. 산을 오르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그들이 위를 보고 걸어갈 때 나는 수평선을 쳐다보았다는 사실이다. 날마다 위아래를 쳐다보며 높이를 가늠하는 삶에서 탈출했다가 다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기는 힘들다. 하루 종일 수평선을 쳐다보며 앉아 있던 글로리아의 남편이 어느 날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부인 글로리아의 남편은 물고기는 어쩌다 한 번 잡지만 사람은 어김없이 낚아온다.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바다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위험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제발 자연을 ‘정복’할 사람들은 오지 말기를.

시폴리테에서 나오는 길에 우연히 웬디를 만났다. 웬디의 실연의 상처를 달래려고 같이 푸에르토에스콘디도로 향했다. 바다는 질리지도 않고 낙담한 사람도 들뜬 사람도 ‘수평적으로’ 맞아주었다. 붐비는 바다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사해평등이란 말이 달리 생겨난 게 아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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